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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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아내의 예언 (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3-18 04:48
조회
147
안전 때문에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대기만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네 그룹으로 나눠 어제 밤에 참관했던 JOY 금요 모임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한 시간 정도 소감을 나눈 후 각 그룹에서 나눈 것들을 발표하게 했다. 족자 사역을 지켜본 이들은 하나같이 인도네시아 조이 모임이 열정적인 모임이었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점심때가 되어도 여진은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족자의 상황은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해가 지고 어두워졌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텔에는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족자에 있는 호텔들은 어디나 상황이 마찬가지였다. 벽에 금이 가고 기와장이 떨어져 투숙객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사용이 금지되었다.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족자에서 3시간 떨어진 스마랑으로 갈까 아니면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솔로로 갈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렇다! 만약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호텔로 가는 것이 상책이다. 쌀라티가에는 바로 전 해인 2005년에 우리 가족이 머물렀었던 라라스 아스리 호텔이 있었다. 그곳은 족자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가는 곳이다.

쌀라티가의 라라스 아스리 호텔로 가고 싶다고 하자 머큐리 호텔 측에서는 즉시 라라스 아스리 호텔로 전화를 해서 21명의 한국 투숙객을 받을 수 있는지 타진했다. 우리는 저녁도 먹지 못한 채 기다렸다가 라라스 아스리 호텔에서 보내주는 차가 도착하는 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 팀들은 네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쌀라티가로 가게 되었다. 지친 우리는 모두 잠이 들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라라스 아스리 호텔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보고 감탄하게 된 것이다.

족자 JOY의 여러 사역 현장을 참관할 수 없는 관계로, 족자에서 후임으로 사역하던 경의영 선교사와 총무로 섬기던 수시 자매를 비롯해서, 매스미디어를 담당하던 간사, 금요 미팅 프로그램 디렉터로 섬기던 간사, 부디렉터로 섬기던 간사, 셀그룹 코치 간사, 대학생, 매스 미팅 시설부를 돕던 간사 등 인도네시아 JOY 스탭 여섯 명이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서 쌀라티가까지 와주었다.

이렇게 족자 세미나를 족자가 아닌 쌀라티가의 라라스 아스리 호텔에서 하게 된 것은 아내가 지진이 나기 1년 전에 예언을 한 대로였다. 2005년 족자에서 선교 인도네시아 대회가 있었다. 조이를 중심으로 교회들과 청년 단체들이 연합해서 한국에서 열리는 선교한국처럼 젊은이들에게 선교를 고취하기 위해서 한 모임에 영광스럽게 강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휴가를 겸해서 온 가족이 다시 족자를 방문하게 되었다. 족자에서의 선교대회를 마치고 다위와 호세가 다니던 쌀라티가의 마운튼 뷰 스쿨에서 사역하는 호세를 돌봐주었던 미국 선교사네가 우리를 쌀라티가로 초청했다.

그 미국 선교사는 쌀라티가에 좋은 호텔이 생겼다며 호텔로 우리를 안내했다. 환상적인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말했다.
“여보, 여기 좋은데 족자 세미나를 라라스 아스리 호텔에 묵으면서 하는 건 어때요?”
당시에 나는 아내가 하는 제안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금요 모임은 어떻게 하고?”
“그야 금요일에만 족자에 가서 보고 오면 되지.”
아내는 부담 없이 말했다.
“그럼 다른 사역은 어떻게 하고?”
“그야 간사들이 쌀라티가로 오면 되지?”
그 때는 아내의 말이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 뒤에 아내의 예언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