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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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피그트리의 꿈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3-23 09:27
조회
128
11-5 피그트리의 꿈

2008년 초부터 나는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어떤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침마다 일어나 인도네시아 조이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처음에는 눈물이 났다.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하는 전임간사들과 학생들이 눈에 선했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었던 육군 박물관 강당을 쓰지 못하게 되어 위스마 임마누엘이라는 아주 작고 동네 한 가운데 있는 작은 강당을 사용하는데, 갈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조이의 금요모임은 족자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매우 중요한 사역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도울 방법은 없고 눈물로 기도하지만 눈물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눈물과 한숨이 꿈으로 변하게 되었다.

1992년 몇 명의 대학생으로 시작된 조이. 하나님의 은혜로 족자의 많은 대학생들이 주님을 알고 그의 제자로 성장하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작은 영어 모음으로 시작했다가 대학생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금요 모임은 무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매주 25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서 워십 댄스, 연극, 찬양 등을 하기 위해서는 무대가 있는 큰 강당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몇 년 동안 족자의 유서 깊은 육군 박물관 강당을 사용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천정이 세고 전기가 나가기도 하고, 에어콘이 없어 500명 정도가 모여서 성탄절이나 부활절 행사를 하려면 찜통이 무색할 정도지만 대학생들은 매주 모임을 즐거운 가운데서 해나갔다. 선교지든 한국이든 학생 사역은 언제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일반 지역교회처럼 성도들이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은 적은데 비용은 계속 늘어나야 한다.

그런 모임을 뒤로 두고 한국으로 와서 OMF의 대표를 하면서도 마음은 늘 족자의 필요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고작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육군 박물관 강당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생들은 그 많은 짐들을 끌고 아주 작은 강당으로 옮겨갔습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렇게 눈을 감고 기도하다가 묵상을 하다가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는 족자의 두 가지가 어른거렸다. 하나는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이었다. 매달 1만 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이 족자를 찾는다. 이들은 족자에 있는 보로부두르와 같은 오래된 사원을 보기 위해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밤에는 관광객들이 딱히 할 것이 없다. 만약 족자에 민속극장 같은 것이 있다면 이러한 관광객들은 반드시 보러 갈 것이다. 그러면 민속 극장은 무대가 있어서 금요일마다 조이가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민속극장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조이에서 워십 댄스를 하는 학생들이 졸업을 한 후 직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게 꿈을 꾸던 날 아침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 17:6)

그래서 나는 그 민속 극장을 뽕나무 극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