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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장례식 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20-06-29 20:57
조회
49
하와이 공항은 주로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1988년 당시 가장 많은 관광객은 일본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제법 든 일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혼여행을 온 젊은 이들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국력을 실감했다. 나는 겨우 아버지 임종을 본다고 정부에 사정사정을 해서 일반 여권도 아닌 여행증명서를 받아가지고 온 미국에 일본에서는 신혼여행을 오다니.

하와이 주정부에서도 일본 관광객에 대해서는 따로 비자가 필요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니 하와이는 온통 일본 관광객 투성이었다.

그 사이에 한국인이 입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줄이 긴지 깜짝 놀랐다. 입국장에서만 거의 세 시간을 지낸 것 같았다.

9시간 비행기를 타고와서 입국장에서 서서 기다리는 것도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 비행기 출발 5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김포공항에 3시간 전에 도착해서 비행기 탑승 수속을 했다. 그러니 아버지와 집에서 국제전화를 한 지 24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아버지의 목소리로는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장례식만 참석한다고 해도 다행이지만 이왕이면 살아계신 아버지를 뵙고 임종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하와이 공항 입국장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집에 도착했을 때 만약 아버지가 몇 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얼마나 한이 될까 하는 염려가 가장 컸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에 나가 픽업 나온 동생을 만나자마자 물었다.

"아버지는 어떠시냐?"

오늘은 돌아가실 것 같지 않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집에 도착해서 이제 뼈와 가죽만 남은 아버지의 손을 만지자 아버지가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창남아, 와줘서 고맙다."

나는 아버지 옆에서 눈물만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