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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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피그트리의 꿈 (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3-24 12:38
조회
137
뽕나무 극장을 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춤을 출 무용수들이다. 무용수들을 모으고 훈련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일이다. 마침 조이에서 워십댄스의 주장이었던 난도라고 하는 형제가 졸업을 하고 고향 숨바섬에 내려가 돼지를 치고 있었다. 그 형제는 조이에 있는 동안 가장 워십 댄스를 잘 하던 형제였다. 난도는 할 수만 있다면 족자에 남아 계속 춤을 추고 싶어 했지만 족자에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국 가족들이 있는 섬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돼지를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난도 형제를 족자로 다시 불렀다. 그리고 뽕나무 극장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그 형제는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자기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별히 족자에는 대학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인도네시아에 예술 대학이 있는데, 그 대학에는 음악, 미술, 무용 메디아 등의 전문분야에 꽤 수준있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난도는 이런 학생들에게 알바의 기회를 주면서 족자 프로젝트라고 하는 이름으로 민속춤을 준비했다.

두 번째 문제는 극장을 위한 투자자였다. 초기 투자는 주차 공간이 있는 땅을 구입하고 그곳에 극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억 원 정도의 투자비용이 필요했다. 수중에는 단 돈 천만 원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난 20년을 지내왔으니 그 믿음으로 투자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족자에서 드디어 무용팀들이 결성되고 한두 번 공연을 했는데 무용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공연장을 빌리고 무용수들에게 월급을 주고, 의상을 빌리고 무대장치를 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일 년 정도 유지를 하다가 문을 닫기로 할 무렵 전혀 생각지 못한 소식을 들었다.

파송교회인 송원교회가 오병옥 목사님의 은퇴를 기념해서 인도네시아에 선교 센터를 짓기로 했다는 것이다. 3억 정도를 생각한다고 들었다. 소식을 듣는 순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겨자씨보다 훨씬 큰 시작이었다. 투자자들을 모으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생각되어 모금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2009년 9월 족자에 가서 수실로 씨라는 분이 가진 건물을 보게 되었다. 뽕나무 극장을 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였다. 하지만 건물 구입을 위한 금액이 너무 컸다. 수실로 씨는 12억을 달라고 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인 수실로 씨는 우리가 모금을 통해서 자기의 건물을 구입한다는 것을 알고 혹시 자금이 모자라 해약을 하게 될 경우 위약금을 물리지 않겠다고 했다.

모금을 위해 팜플렛도 만들어 사람들에게 필요를 알렸다. 많은 분들이 후원을 했다. 무엇보다 송원교회가 3억을 그리고 성도들이 5천만 원 가까운 금액을 모금해주었다. 세무대학 제자들도 모금에 동참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모으던 우표도 판매를 했다. 그래서 대충 모인 돈이 5억 5천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원하는 건물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수실로 씨의 건물을 해약하고 새로운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스뚜란이라고 하는 대학가가 밀집한 곳에 센터를 위한 대지는 확보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꿈은 이루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조이 학생들과 졸업생들에게는 언젠가 그 곳에 조이 센터가 세워질 것이라는 꿈을 가지기에 충분한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