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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겸손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21 09:11
조회
438
CBMC 2017, 2, 21

제목: 제자의 겸손
본문: 행 15: 7-11

베드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질문) 다혈질, 성급함, 용감함, .... 이런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아닌가요? 네, 초기에는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의 모습이 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헬라파 과부들과 히브리파 과부들의 갈등이 일어났을 때 전권을 내어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 동안 접대를 일삼았다는 번역이 맞는지 모르겠다. 영어로 serving the table이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식탁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인데 얼른 생각하면 식당에 있는 식탁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비나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무, 행정, 돈의 출납과 관련된 일들 말입니다. 아마 당신에는 지폐가 없고 모두 동전을 사용했을테니 헌금을 계소하기 위해서도 테이블이 필요하고,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줄 때도 테이블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테이블을 헬라파들에게 내주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다혈질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사도행전 10장과 11장을 보겠습니다. 고넬료네 집에 다녀와서 교회 지도자들 앞에선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는 주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성령님이 하시는 음성을 듣고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돌아왔을 때 교회 리더들이 베드로를 힐난합니다. 만약 우리가 아는 베드로, 다혈질의 베드로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베드로는 11장에서 순서대로 설명했다고 말한다. 영어로 orderly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는 대로 그가 다혈질적으로 반응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15장에서의 모습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미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15장에서 베드로는 유대인의 전통을 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술이나 담배 문제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힘들지 않았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매우 보수적인 교파에서 주일 성수를 그렇게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 가지 사건을 굳이 현재 하는 일에 대해서든,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설명할 때든, 앞으로 미래적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베드로는 진정으로 겸손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뭔가를 한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멋진 모습은 됨됨입니다. 영어 표현하자면 doing이 아니라 being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서 가장 보기를 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뭔가를 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이 강한 이미지인가요, 아니면 연약한 이미지인가요. 당시 로마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연약한 인간을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황제처럼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이 죽었을 때 그들을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파워, 힘이 곧 신의 전제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을 보면 나는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라고 하는 말을 예수님이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 겸손하다면 내게 와서 배우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여기서 겸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타페이노스인데 이 타페이노스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뭔가 있는 사람이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하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 뭔가 내놓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습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해준 성경이 이사야 53장입니다.

골로새서 2장 18절에는 일부러 겸손을 떠는 것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는 일부러 겸손을 떠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문화적 관점에서 여기 성경의 겸손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없는 사람과 없는 척하는 사람이 다르고 정말 아픈 사람과 아픈 척 하는 사람이 다른 것처럼 정말 겸손한 사람과 겸손한 척 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하셨어요.“ 이런 표현도 조금 조심해야 합니다. 같은 일을 해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있을 때 성공적으로 한 사람이 하나님이 하셨어요. 하면 실패한 사람은 하나님이 하지 않으셨다는 뜻인가요.

베드로가 겸손해진 것은 그의 서신에도 잘 나타나있습니다. 베드로 전서를 보면 겸손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타납니다. 우리 한번 살펴볼까요? 우리가 아는 베드로 다혈질, 실수투성이, 나서는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게바를 야단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오히려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는 바울의 추켜세워 줍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겸손이라는 기능이 언제 작동할 수 있을까요?

1. 다른 사람들이 별 거 아니 것을 가지고 불평불만 할 때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주었는데도 여전히 달라고 하는 사람을 대할 때 아니 나처럼 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가 아니고 내가 더 줄 것은 없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이 오리를 함께 가달라고 하더냐, 그러면 십리를 가주어라. 어떤 사람이 네게 속옷을 달라고 하더냐, 겉옷도 내주어라.

2.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때, 혹은 혹평을 들을 때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즉시 시선을 돌리지 말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내가 거는 기대가 높은가.
허드슨 테일러의 모습 가운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 24, 25쪽)

3.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어야 할 때입니다.
아마도 가장 힘든 부분은 여기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내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적으로 계속 이루어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계속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럴 때는 이렇게 겸손해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겸손을 저절로 나타날 것입니다. 타페이노스. 베드로, 아니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 우리들 속에서 나타나는 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