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강의

설교/강의

전투적 삶 (온누리 교회 새벽 예배 설교)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7-27 11:04
조회
146
온누리 교회 새벽 예배 설교
2017년 7월 26일

본문: 민수기 34: 1-15
제목: 전투적 삶

여러분 가운데 여기 나오는 지명을 모두 아는 분들은 몇 분이나 되시나요? 여러분 가운데 이 지명을 들으며 가슴이 뛰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시나요? 별로 없으신 것 같네요. 저도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하지만 3천 5백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슴을 뛰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감격을 주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로 들어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전열을 가다듬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전쟁에 참여할 사람들을 계수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는 것처럼 민수기 13장에서 12지파의 정탐군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됩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빼고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낙담하게 만들었습니다. 13장 30절과 31절의 말씀입니다.

30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이스라엘이 40년을 광야에서 떠돌게 하셨습니다.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순종은 이렇게 힘든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도록 했습니다.

그 광야에서 고난 받던 시간이 거의 다 지났습니다. 불평하던 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광야에서 한 것은 전투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바로 나온 구세대는 전투와 관계없는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면서도 툭하면 노예로 있었을 때 먹던 음식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노예였지만 편안한 삶에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그런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간 들 뭘 할 수 있을까요? 주님이 이런 것을 잘 아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불순종한 세대가 거의 다 광야에서 죽고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을 정복하기 직전에 모세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될 땅의 범위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말하는 이 장면에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모세가 말해주는 그 땅에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한국형 모세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는 곧 해방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차지할 땅은 북쪽 경계는 압록강으로부터 백두산을 지나 두만강을 지나고 나진선봉까지입니다. 남쪽으로는 제주도를 지나 마라도까지입니다. 동쪽 끝은 울릉도를 지나 독도까지입니다. 서쪽은 평안북도 신도군 끝에 있는 비단섬까지입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우리 가슴이 더 뛰었을 겁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땅을 제비 뽑아 나눈 이야기만 나오지만 앞으로 전개될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로또 당첨되기만 기다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혹독한 전투를 치르며 땅을 정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 민수기 34장을 읽을 때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 지명이 나오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겠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정체성보다 더 귀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야기)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우리는 언제 가슴이 뛰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우리의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교회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들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터키 반도를 넘어 그리스 지역, 그리고 로마제국 전역으로 나갔습니다. 갈릴리에서 시작한 소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간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이런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예루살렘 안에서 수 천 명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사마리아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1장 21절에는 안디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19장에서는 에베소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돌아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21장 20절에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야고보를 포함한 교회 리더들이 말하기를 유대인 가운데 수 만 명이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후로 복음은 로마제국을 넘어서 유럽 전체에 퍼집니다. 그리고 아시아로 라틴 아메리카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퍼져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러 가기 위해 일 년 가까이 배를 타고 가야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관을 가지고 가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러 간 곳에서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주님 품에 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땅끝까지” 라고 하는 그 말에 가슴이 뛰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놀라운 복음의 확산과 비극적 현실)

하지만 복음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전개된 것은 아닙니다. 1910년에는 전세계 인구의 3% 미만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수 백 년에 걸쳐 서구교회들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1970년까지 전세계 인구의 5%가 그리스도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0년 동안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재는 전세계에서 12%이상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비극적인 현실도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30억이나 되는 사람이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절로 확산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에 의해서 침노를 당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해석하기 난해한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천국은 빼앗듯이 달려들 듯 들어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천국은 악한 세력에 의해서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투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 전시 중에 있습니다. 전시 상태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려주는 예가 있습니다. 퀸 메리라고 하는 호와 유람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차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 배는 전쟁이 참가할 군인을 호송하는 배로 바뀌었습니다. 호화로운 객실에는 과거 한 두 명만이 여유있게 타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수송선으로 바뀌자 한 방에 12명의 군인이 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저는 특별히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구역은 요단강 동쪽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아홉과 반 지파가 땅을 구하지 못하는 동안에 이들은 자신들이 불하 받은 땅에서 평안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 전쟁 중에 있는 다른 지파들을 위해서 전쟁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전쟁에 동참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요단강 동쪽에 마련된 자기들의 땅에 가족들과 남아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민수기 32장에 있습니다. 5절입니다.

5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모세가 역정을 냅니다. 6절부터입니다.

6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7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8너희 조상들도 내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냈을 때에 그리 하였었나니
9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을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10그 때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11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2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1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 방황하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마침내는 다 끊어졌느니라
14보라 너희는 너희의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15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지금 자기들의 영역이 확정되었다고 전투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하는 짓이 40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그들의 선조들이 한 것과 똑 같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입니다. 그런데 그 불순종의 밑바닥에 뭐가 있습니까. 편한함에 길들여진 모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 형제들이 안식을 누릴 때까지 요단강을 함께 건너가 싸우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오늘 함께 기도하시겠지만 온누리 교회 많은 사역자들이 그 전투를 위해서 일본에 가있습니다. 러브 소나타를 포함해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전투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쩌면 이제는 편하게 예배드리고 주님 안에서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주님의 나라는 확장 중에 있습니다. 그 일이 다 마칠 때까지 우리는 전시 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단체를 만든 허드슨 테일러는 영국에서 중국 선교사로 갈 준비를 하면서 어떤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할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자기는 푹신한 닭털 침대에서 자는데 중국에는 그런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그는 닭털 침대를 버리고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것이 전시체제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혹이 우리 가운데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전투를 잊은 분들이 계십니까. 혹시 우리의 편안함에 길들여져서 불편한 전투를 포기한 분들이 있습니까. 오늘 주님께 다시 나아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