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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7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7
조회
75
장미 아파트



2001년이 되기까지 한 번도 내 생애에 잠실에서 그것도 46평짜리 장미 아파트에서 10년 가까이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더욱이 교통 편리하고 여러 가지 근린 시설 좋은 한강 변에서 웬 호강이냐 하면서 황송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잠실의 장미 아파트는 1979년에 영국 OMF 선교가 하명수 씨라는 분에게서 구입을 했다. 거의 새 집이나 마찬 가지인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개인 집이 아니라 당시에는 업무도 보는 사무실 겸, 또 외국에서 손님이 오시면 쉬는 guest house를 겸해서 3천 8백만 원에 구입을 했다고 한다. 한국 홈 (한국 선교사를 파송하는 구조를 이렇게 부릅니다.)은 당시 연희동에 아파트가 한 채 있었는데, 나중에 그것을 장미 아파트와 바꾼 것이다.



80년대 초 당시 우리나라 법에는 외국인의 건물 취득은 허용이 되었지만 토지의 취득은 허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영국 선교사는 건물 분에 대해서는 이전 등기를 했고, 토지에 대해서는 이전 등기를 하지 않은 채 살았던 것 같다. 나중에 법이 바뀌어서 외국인도 토지의 취득이 가능해졌지만 당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건물을 판 하명수 씨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미 모두 양도를 했는데, 자기의 토지로 계속 남아 있으니 별로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교통도 불편하고 (당시는 잠실이 개발된 강남의 끝이었다.) 여러 가지 시설도 많지 않았던 곳이 88 올림픽을 전후로 서울의 중심이 되다시피 하고 아파트 값이 많이 오르자 아까운 마음도 많았을 것이다.



물론 OMF는 토지에 대한 재산세 등, 모든 의무는 다 이행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하명수 씨는 불편한 입장 때문에 법원에 민사소송을 해서 OMF가 빨리 토지 분에 대해서 이전 등기를 하도록 했고, 패소를 한 OMF는 소송비용을 다 물어주었다. 하지만 이전 등기는 하지 못한 채 그냥 몇 해를 넘기고 있었다.



OMF가 이전 등기를 하지 못한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외국 선교사는 (나도 외국에서 사역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하지만) 한국 물정을 모르고 복잡한 법률 용어 등에 자신이 없어서 한국의 선교사들이 사무실 총무, 간사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선교사들이 안식년 기간 동안 돕다 가고, 총무나 간사도 계속 바뀌고 하는 상황이 계속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