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9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12
조회
109
고린도 전서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재정 이야기를 매우 확실하게 하는 곳은 빌립보서에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교회 안에 두 명의 지도자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 사도 바울의 제안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4장 후반에는 재정에 관한 문제를 매우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언급합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4:10-19)



이것을 제 표현대로 한번 다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0절에서 말하는 “나를 생각하던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을 재정적으로 돕기로 했던 모종의 계획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11절과 12절에서 사도 바울이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는 것을 배웠다고 하는 것은 헌금이 없어도 지내는 법을 배웠다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14절에서 내 괴로움에 참여했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빌립보교회가 사도 바울의 궁핍함을 채워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16절에서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것을 한 번뿐 아니라 두 번 보냈다고 하는 것은 여러 번 보낸 것일까요? 아닙니다. 제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18절에서 에바브로디도 편에 받은 헌금 때문에 풍족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도 이야기 하지만 사도 바울의 이런 인간적인 면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이런 표현들이 사도 바울이 텐트만 계속 만드는 자비량 선교사였고 교회들이나 성도들로부터의 후원이 필요 없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중요한 반증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는 사도로서 후원을 받으며 전적으로 사역에 전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2부에서도 강조했지만 사도행전 8장부터 나오는 흩어진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이런 재정적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마도 가는 곳마다 계속 텐트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사역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한 재정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접촉에서도 효과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