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63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03
조회
59
제 삶을 돌아보아도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만나 경험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선교지로 가기 전에 세무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캠퍼스 내에는 기독학생회라는 아름다운 기독학생회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지도교수로 학생들과 자주 만났습니다. 특히 임원 훈련을 하면서 학생들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세무대학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학교라 학생들이 주중에 외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저녁에 캠퍼스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매주 모이는 정기 모임에는 약 70명가량 되었는데, 그것은 전체 캠퍼스에 있는 학생의 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학생들의 찬양은 뜨거웠고, 새로 주님을 믿기로 한 학생들의 간증으로 모임은 늘 활기에 넘쳤습니다.



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인도하고 있을 때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소명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로 가려고 생각할 때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세무대학 기독학생회라는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제가 떠나고 난 후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주님이 이 공동체를 지켜 주시리라 하는 생각만 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학교 안에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이 공동체에 접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학교 안에서 좌경화 된 생각을 가지고 캠퍼스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세무대학을 떠나고 나면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교수가 기독학생회의 지도교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두 명의 임원이 우리 집에 와서 몇 몇 학생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며 염려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임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깊은 시름이 생겼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학에서는 동아리로 인정하려면 반드시 지도교수가 있어야 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학생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동안 복음 안에서 교제하던 아름다운 공동체가 변질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생각되었다.



아무리 선교지에 가는 것이 분명한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해도 세무대학 기독학생회가 문제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선교지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는 없었고 그날 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도록 기도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깨가 늘어져 기숙사로 돌아가는 두 명의 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서 그 학생들이 듣게 말해라. 손창남 교수가 그러는데, 아무리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기독학생회가 어려움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