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아버지의 장례식 1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20-06-27 14:59
조회
66
1978년 봄 누나는 친구 오빠와 결혼하고 하와이로 떠났다. 참으로 득돌 같은 결혼식이었다.

하와이에 이민 가서 살던 누나 친구 오빠가 선을 보기 위해서 한국에 왔는데, 잘 안 된 모양이다.

누나 친구가 그럼 우리 누나가 아직 미혼이니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갑자기 누나도 좋다고 하고 누나 친구의 오빠도 좋다고 해서 전격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하도 빠르게 결혼이 진행되어 나는 정신이 없었다.

매형이 미국으로 먼저 떠나고 누나는 배우자 비자를 기다렸다가 몇 달 후에 출국을 했다.

퇴직을 하신 아버지도 누나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가시고, 어머니도 가시고, 두 동생도 모두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우리 가족만 한국에서 남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외 미국으로 이민을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나는 마땅히 갈 이유가 없었다.

이미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로 가기로 한 사람인데, 왜 굳이 또 미국으로 이민을 갈 필요가 없었다.

1985년이에는 동생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제수씨들도 모두 미국으로 갔다.

1988년 3월에 아버지가 위암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음이 많이 슬펐지만 하나님이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침 3월에 아버지 환갑잔치도 할 겸 하와이에 가서 아버지께 복음을 전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를 영접하셨다.

당시 세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때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나마 학기 중인데도 일주일 휴가를 내주신 학장님께 감사했다.

아버지의 위암 수술은 이미 늦어서 의사는 아버지가 4개월 이상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아버지가 수술을 하신 것이 1월이었느니 나는 5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6월초가 되어도 살아계셨다. 가끔 국제전화로 통화를 하는데, 점점 목소리는 약해지셨지만 또렷하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

학기말이 곧 다가오니 방학하면 다시 가서 뵙겠다고 아버지께 약속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오기를 내심 무척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학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한 학기 일찍 기말고사를 보고 나는 서둘러 하와이로 갔다. 하와이로 가는 비행시간은 9시간이다. 문제는 입국 수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