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67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44
조회
89
● 교수회의



선교지로 가기 전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 내가 참석한 교수회의는 심각하다 못해 때론 살벌하기까지 했다. 교수들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뿐 아니라 의견이 다른 교수를 심하게 공격하기도 했다.



반면 인도네시아의 교수회의는 언제나 화기애애했다. 결론이 나지 않아도 시종일관 웃으며 농담하고, 여유롭게 회의했다. 효율성이라는 면만 보면 문제가 있지만 분위기는 그만이었다. 처음에 인도네시아 교수회의에 가서는 멋도 모르고 질문하고,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나와 다를 때에는 열심히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교수 2년 차가 되어가자 눈치가 조금씩 생기고 철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회의 때 남과 다른 생각이 있어도 그저 다른 교수들처럼 조용히 앉아 함께 웃으며 산만한 회의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번은 교수회의에서 매우 예민한 안건을 다루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내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다른 교수들처럼 땅콩과 달콤한 차를 마시며 편안한 마음으로 교수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때 경상대 학장이 갑자기 나를 지명해서 한창 토의중인 안건에 대해서 내 의견을 물었다.



순간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렇게 학장이 지목해서 교수 개인의 의견을 묻는 것은 인도네시아 방식은 아니었다. 사실 속으로는 그 안건이 그렇게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인도네시아 교수들처럼 겉으로 딱 부러지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심각하지 않은 표정으로 편안하게 대답했다.

“학장님,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회의를 끝내고 회의실을 빠져나오는데, 학장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빡 손은 상태가 아주 나빠졌어요.”

(캠퍼스에서 사람들은 나를 ‘빡 손’이라고 불렀다. ‘빡’이라는 말은 남자들에게 존칭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이름이나 성 앞에 붙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 성인 ‘손’ 앞에 빡을 붙여서 불렀다.)



나는 학장의 말에 무척 당황했다.

“네? 학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학장은 나에게 솔직히 말해 주었다.

“빡 손이 그전에는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이야기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시네요. 이제는 우리 인도네시아 사람처럼 행동하시네요.”

학장의 말은, 내가 두따와짜나 대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교수회의에서 내 생각을 바르게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핑계를 댔다.

“이곳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그러자 학장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문화에 속해 있어서 바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빡 손을 우리가 할 수 없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을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날 내가 인도네시아 교수들에게 내부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