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선교와 문화 3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38
조회
271
번역가능성(Translatability):



이슬람이나 힌두교 등 세계적인 종교와 비교했을 때 기독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그 중 하나는 소위 번역가능성이라는 점이다. 기독교는 문화를 이동해서도 그 진리가 변하지 않고 전해질 수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아람어를 쓰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어록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헬라어로 쓰여졌다. 이것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많다. 즉 예수님이 사용한 모든 용어들을 헬라의 종교 용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도행전의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가서 헬라 사람들에게 퀴리오스 하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슬람은 매우 경직된 진리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선지자 무하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받았을 때 아랍어로 들었기 때문에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는 꾸란만이 진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랍어로 되어 있는 꾸란을 다른 언어로 바꾸면 그 뜻이 정확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슬람들은 기독교의 진리가 왜곡되었다고 믿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성경이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성경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신약만이 아니다. 구약의 경우도 예수님이 오시기 전 250년 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72명의 유대 장로들이 모여 헬라어로 구약을 번역했는데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디아스로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번역 가능성은 타문화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된다. 만약 하나님의 진리가 한 언어로만 전달되어야 한다면 복음의 확산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부분을 분명히 다루고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우리가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듣는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또 고넬료라고 하는 백부장의 집에서 베드로가 경험한 사건 또한 그렇다. 고넬료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를 유창하게 했을 리가 없다. 또한 베드로가 헬라어를 유창하게 했을 리가 없다. 아마도 함께 따라갔던 사람들 가운데는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라는 이슬람이 신이라고 하기보다는 아랍의 문화권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도 아랍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심지어 필자가 사역을 하던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어 성경에는 하나님을 알라라고 기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