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15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3
조회
67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에 대한 제 상상은 이렇습니다. 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너무나 파워풀 한 사건이라 이것을 '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은 여전히 종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사건은 예루살렘에 와 있던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유대교에 개종한 이방인, 그리고 심지어 유대교에 관심이 있는 유대인에게 모두 대단한 의미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종교가 주는 광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언어로 갈릴리 출신의 한 집단의 사람들이 뭔가를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자신들이 알아듣는 언어로 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행2:7)



이 사건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에서 하나의 언어가 수많은 언어로 나뉘는 사건과 정반대가 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타락한 인간들의 잘못된 의도를 막기 위해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다른 언어를 통해서 하나가 되게 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7:9-10)



그러니 사도행전 2장에서 나타난 이 방언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은 장차 나타나게 될 사건의 일종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함께 상상을 해봅시다. 만약 우리가 그 곳에 함께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감격을 조금만이라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자신의 말로 복음을 알아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겠지요.



지난 2000년 동안 복음은 다른 언어로 전달되어왔습니다. 다른 언어로 전달되는 것을 막으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복음이 전세계로 전달되기 시작한 선교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라틴어로 되어 있던 성경들이 자국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된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틴 루터에 의해서 성경이 독일어로 번역되고 인쇄되어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읽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의 감격을 생각해보십시오.



여하튼 이 방언 사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되고 예루살렘 교회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믿는 사람들의 구성이 매우 복합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예루살렘에 왔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나중에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의 갈등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