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61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03
조회
81
일전에 캄보디아에서 한국 선교사 가정이 교통사고로 주님 품에 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의사였던 그 선교사는 프놈펜에서 언어공부를 마치고 현지로 떠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온 가족이 타고 가는 차를 화물차가 덮쳤습니다. 선교사님과 부인, 그리고 네 명의 자녀 중 두 명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선교사 가정을 안타까워하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헌신된 선교사 가정을 돌보지 않았는가 하고 의문을 던졌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그런 질문을 갖는 것이 당연한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해서 좋고 순탄한 길로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려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사도 베드로도 우리가 고난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렇다면 캄보디아에서의 불의의 사고를 당하신 선교사님들을 향해서 ‘아, 그 선교사는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길을 갔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몇 년 전 OMF에서 발간한 책 가운데 ‘우리에게 마음대로 살 권리가 있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결론은 ‘없다!’입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권리가 없습니다.



선교사가 우리의 영원한 정체성이 아닙니다. 제자가 우리의 영원한 정체성입니다. 그런 면에서 CIM을 시작한 허드슨 테일러의 다음과 같은 글은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 중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모든 면에서 최대한 예수님을 닮게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라면, 그분은 당신을 십자가와 겸손의 삶으로 이끄실 것이고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셔서 결코 예수님 이외의 다른 사람을 따르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다른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허락하시는 일인데 당신은 못하게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중략)



‘성령께서는 당신을 특별한 잣대로 관리하신다. 시기하시는 사랑으로, 다른 성도들에게는 그냥 지나치실 일도 당신에게는 사소한 말이나 감정, 약간의 시간 낭비도 지적하며 꾸짖으신다. 그러니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 하나님은 무한하신 주권자이셔서 원하는 대로 하실 권리가 있으시다. 그리고 당신을 다루시는 일 가운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수천 가지 있어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으실 수 있다. 그분은 당신이 온전히 그분의 종이 되겠다고 할 때 질투하시는 사랑으로 당신을 감싸 안으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아무 갈등 없이 하고 있는 말이나 행동을 당신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신다.



‘당신을 성령께서 직접 다루시도록 해야 한다. 영원히 그렇게 하라. 그분이 당신의 혀를 재갈 먹이고 손을 묶으며 눈을 감게 하는 권리를 가지셔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대우하지 않으신다. 이제 당신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그렇게 사로잡히면 성령께서 후견인이 되어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하게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럴 때, 당신은 하늘로 통하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