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27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5
조회
221
● 스데반의 설교



스데반의 설교는 사도행전 7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틀림없이 그 시점에 예루살렘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헬라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사도 바울의 선교팀에 합류해서 사도행전을 '우리'라는 대명사로 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라고 불리는 사도행전 16장부터입니다.



이렇게 긴 설교는 누군가가 누가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당시는 구전문학이라는 것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던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전토 판소리 등도 몇 시간씩 이야기를 소리로 전해주는데 그 내용이 마음대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who) 이것을 듣고 누가 (Lukas)에게 전해주었겠는가 입니다. 누가는 나중에 사도 바울에게 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상상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아주 똑똑하게 스데반의 선교 현장에서 그가 하는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7:58)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행8:1a)



이렇게 스데반과 사울이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제 상상력은 사울이 어디 숨어 있다가 스데반의 죽는 현장에 뛰어와서 옷을 맡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6장에서 길리기아 출신들의 회당 (시나고그라고 불리는 유대인의 회장)에서 이미 스데반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은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의 내용입니다. 이 설교를 잘 보십시오. 이곳에 세 명의 중심이 되어 언급됩니다. 아브라함, 요셉, 그리고 모세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왜 이삭은 빠져있습니까? 왜 야곱은 빠져있습니까? 유다는 왜 빠져 있습니까? 왜 여호수는, 갈렙은 빠져있습니까?



글쎄요. 혹시 이 세 사람이 모두 디아스포라라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와 우르 사람인데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가나안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요셉은 자기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와서 살게 됩니다. 모세도 자기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으로 애굽에서 태어나고 애굽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 세 사람의 역학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스데반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성전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부터 3절 사이에는 아브라함이 성전이 아닌 하란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행7:2,3)



9절과 10절은 애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나타나 역사 하고 계심을 이야기 합니다.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행7:9,10)



29절부터 33절까지는 모세가 미디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역사 하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행7:2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