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1-1 건이의 스케이트 (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1-30 17:14
조회
189
나도 사실은 한빛 써클 모임에 참석 하고 싶었다. 그곳에 가서 현재 활동하는 후배들뿐 아니라 아주 오랜만에 친했던 동기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는 건이의 스케이트를 사주어야 한다는 임무가 있었다. 그래서 우익이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우익이는 그런 거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초등학교 때 타던 스케이트가 있는데 그것을 그냥 주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우익이의 스케이트를 공짜로 얻어서 집에 가져가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고 나는 저녁에 한빛 써클 모임에 가서 그리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익이와 함께 그 모임에 가기로 했다.

모임은 예상한 것처럼 즐거웠다. 그토록 모임에 열심이었다가 3학년 2학기가 되자 전혀 얼굴을 보이지지 않던 내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반색을 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밤 10시가 다되어 모임을 마무리 하고 우익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우익이와 우리집 사이는 1킬로미터 정도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먼저 우익이네 집으로 갔다.

우익이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자 우익이는 얼른 물었다.
“엄마, 내가 초등학교 때 신던 스케이트 있지?”
“어, 그거 벌써 고물상에 팔았는데.....”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우익이가 신던 스케이트를 얻어서 건이 엄마에게 드리고 4천원도 돌려드리겠다는 야무진 꿈이 확 깨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아, 이런 일이 있나. 건이 엄마가 하루를 더 우리집에서 머물 수만 있다면 나는 다음날 청계천에 가서 중고 스케이트를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이 엄마는 다음날 고향으로 가야만 한다.
우익이네 집을 나와 우리집으로 돌아오는데 힘이 쭉 빠졌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우익이도 좋은 뜻으로 제안을 했던 것이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주님께서 내가 한빛 모임에 나가는 것을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아침에 주님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기도는 시시해서 들어주지 않는데 공연히 열심히 기도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종점 가까이에 있는 중국집 문도 닫혀있었고, 그 옆의 양품점 가게도 닫혀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가게가 아직 문을 열고 있었다. 문구점이다. 나는 문구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그 문구점에 자주 갔었다. 문구점에는 조그만 쇼윈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쇼윈도의 위에 자그마한 스케이트가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건의의 발 사이즈에 맞을 것처럼 보였다.

정말 반가웠다. 그 스케이트는 분명 중고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중고냐 새 거냐를 따질 겨를이 아니다. 새 스케이트의 가격이 중고의 배가 된다고 해도 나는 사야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4천원 밖에 없지만 주인은 내 얼굴을 잘 알고 있으니 며칠 후에 준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케이트의 가격을 물었다. 주인이 쇼윈도우에서 스케이트를 꺼내왔다. 그리고 스케이트 날 부분을 보여주었다.

“학생, 이게 작년부터 여기 걸어놓았던 건데, 이렇게 날에 녹이 슬었네, 원래 가격은 8천원인데, 4천원에 줄게.”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날에 녹이 조금 슨 것 이외에는 완벽하게 새로운 스케이트였다. 그런데 그것을 4천원에 살 수 있다니. 4천원이라면 건이 엄마가 부탁한 가격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스케이트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이 느껴졌다. 아주 작은 것에도 하나님의 간섭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