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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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담당교수의 이름은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03 07:51
조회
235
2-2. 담당교수의 이름은

학기말 고사 채점을 하다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공정성을 위해서 보통 시험결과를 채점할 때 학생의 이름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답안지를 잘 정리해서 쓸 수 있었을까. 100점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주관식 문제에 100점은 없다는 소신 때문에 99점이라고 점수를 적었다. 하도 기특한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학생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김재근! 파란 볼펜으로 쓴 한자 이름은 왕희지의 필체에 버금갈 정도로 명필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담당교수 난에 적은 내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창녀. 곱게 써놓은 내 이름이 손창남이 아니라 사내 남 자를 계집 녀 자로 바꾸어 쓴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퇴학당할 것을 각오하고 자신을 가르치 교수를 모욕하기 위해서 썼다면 그런대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360명 전체에서 가장 잘 쓴 답안지에 왜 내 이름을 이렇게 적어놓았을까. 내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난으로 썼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채점을 하던 손을 멈추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을 했다.

학생과로 내려가서 주임에게 김재근 학생의 집이 어딘지 물었다. 유성이라고 했다. 집에 전화가 있느냐고 했더니 전화가 있단다. 내 방으로 돌아와 학생과 주임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재근이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무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는 손창남 교수라고 합니다. 혹시 재근이 있으면 잠깐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재근이는 지금 대전에 가 있습니다. 방학 동안 회계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요.”
순간 이건 또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하자마자 자기 고향으로 내려갔다면... 친구들과 놀러 다닐 나이인데 회계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서 대전에 있는 학원에 갔다니 얼마나 기특한 학생인가. 그런데 왜 시험 답안지에 그런 짓을 했을까.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그러세요. 죄송한데 재근이 신상에 관해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 대전에 가셔서 재근이를 데리고 학교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꼭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내 감정을 자제하며 통화를 마쳤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교수가 호출을 하는 통에 재근이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점심식사를 하다가 민법을 가르치던 한복룡 교수와 답안지에 써 있는 내 이름에 관해 대화를 하게 되었다. 성격이 느긋한 한 교수는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고 물었다. 재근이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버지에게 재근이를 데리고 빨리 학교로 오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재근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를 확인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며 나를 진정시켰다. 결국 한 교수의 제안대로 한 교수가 부모님을 자기 방에 모시고 학교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가 먼저 재근이와 왜 내 이름을 그렇게 썼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오후 3시 쯤 되었을 때 누군가 내 문을 노크했다. 문을 열어보니 재근이가 부모님을 모시고 밖에 있었다. 일단 재근이를 내 방으로 들어오게 하고 부모님은 옆방에 있는 한복룡 교수에게 인도를 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