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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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담당교수의 이름은 (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03 10:29
조회
238
내 방으로 들어온 재근이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보였다. 교수가 무슨 일로 집에 갑자기 전화를 해서 학원에서 공부하는 자신을 그것도 부모님과 함께 학교로 오라고 했을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퉁명스럽게 내게 물었다.
“교수님,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뭐라고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우선 칭찬부터 해주었다.
“이번 기말 고사 정말 잘 봤던데, 네가 최고 점수야.”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저를 올라오라고 하셨나요?”
“아, 그런데 뭐 하나 확인을 하고 싶어서.”
“뭔데요?”
나는 재근이의 답안지를 보여주었다.
“네 글씨 맞지?”
“네, 맞습니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글씨도 잘 쓰네.”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손창녀라고 써있는 내 이름도 보여주었다.
“이것도 네 글씨체니 네가 쓴 것이 맞지?”
내 이름을 읽는 재근이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그런 재근이의 모습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근이의 행동을 보면 재근이는 내 이름을 자기가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점점 더 궁금했다.
“살려주든 말든 왜 이름을 이렇게 썼는지 이유나 들어보자.”
재근이이는 정말 미안한 표정과 말투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당시 세무대학에는 아직도 20대인 나 말고 거의 대부분이 50대 혹은 60대였다. 그 분들은 한자 문화의 교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한자에 그리 익숙지 않은 세대들이다. 담당교수의 이름을 한자로 잘못 쓴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끌려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자 아마 교실에서는 특별한 시스템이 작동을 한 것 같다. 반장이 언제나 시험 전에 담당교수의 이름을 한자로 칠판에 적어두는 것이다.

재근이는 공부 밖에는 모르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험 전에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반의 반장이었다. 반장이 장난기가 발동해서 칠판에 내 이름을 손창녀라고 썼다가 지웠단다. 다른 학생들은 내 이름을 답안지에 쓸 때는 모두 손창남으로 바꾸어 썼는데, 오로지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재근이는 아무 생각없이 반장이 칠판에 적어 놓은 대로 담당교수 란에 내 이름을 손창녀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는 학생들을 잘 대해주었다. 교수라기보다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형 정도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기에 학생들을 격의 없이 대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기말고사나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할 때면 부정행위자를 골라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두 가지 이유로 부정행위자를 가만 두지 않았다. 첫째는 세무대학을 졸업하면 모두 일선 세무서나 세관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적발해야 한다. 자신들이 바르게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부정을 적발하는 것이 가능할까. 두 번째는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의 때 성경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어떻게 나타낼까를 생각하면서 부정행위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게 대했다. 바른 학생들은 그런 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바르지 못한 학생들은 나에 대한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내 이름을 바꿔 불러서 쾌감을 얻으려고 했다는 것은 충분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재근이의 순진함 때문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결국 부모님께는 재근근이가 내 이름을 어떻게 썼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재근이가 이번에 너무 시험을 잘 봐서 격려하고 싶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부모님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집으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