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1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33
조회
98
그 형제는 뭔가 용건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를 바로 하지 않았다. 통화가 시작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본론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아서 내가 먼저 용건을 물었다. 그제야 그 형제는 자기가 전화한 진짜 이유를 말해 주었다.

“빡 손, 사실은 사라가 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나는 형제에게 그날 아침에 사라와 나눈 이야기를 생각하며 확신 있게 말해 주었다.

“어제까지는 사라가 한국에 가기로 했지만, 오늘 아침에 사라와 만나서 오삔이 대신 가기로 이야기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밤이 늦었으니 잘 쉬고 내일 만납시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스뚜란의 정적과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잠을 청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평온을 깨는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회장으로 섬기는 디또 형제 전화였다. 디또 형제는 조금 전에 전화를 건 형제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사라가 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나는 아까 전화를 건 형제에게 해준 말을 다시 들려주었다. 그러나 디또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다가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나는 밤중에 걸려온 두 통의 전화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자기 일도 아닌데 괜한 일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했다.



사라가 사무실로 나를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기 며칠 전에 선교한국에 참석할 인도네시아 학생 몇 명을 선발했다. 사립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미화 100달러 정도 하는 당시에 한국에 가기 위한 경비가 미화 1,000달러 정도였으니 인도네시아 학생들 가운데 가고 싶지 않은 학생은 없었을 것이다.



만일 한국에 가는 학생을 내가 선택한다면 학생들은 내가 일부의 학생들만을 편애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다섯 명을 선발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현재로는 세 명의 여비밖에 준비되지 못했지만 혹시 누군가 후원을 해주면 나머지 중에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더 갈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아주 성숙하게 선교한국에 참석할 사람을 고르기 전에 어떤 기준으로 선발할 것인지 의논했다. 사실 70명이나 되는 활동 회원들 가운데 다섯 명을 고르기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만 전부 여자가 된다든지 전부 남자가 되는 것은 재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 가는 팀에는 반드시 여자든 남자든 성이 다른 사람이 적어도 한 명 들어가야 했다.



학생들이 고른 사람은 여학생 세 명, 남학생 두 명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이 아주 탁월했다. 그 여학생들은 영어도 잘했고, 리더십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로는 여학생은 두 명만 가고 남학생 중에 한 명이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선발된 세 명에게 가능한 빨리 여권을 만들라고 부탁했다.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여권을 보내고 입국 비자를 받으려면 시간이 매우 빠듯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한국에 가는 것이 확정되지 않은 여학생 한 명과 남학생 한 명을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하지만 세 명이 확정된 것을 보고 무척 기뻤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나에게 문화적 쇼크였다. 이미 인도네시아에 6년씩이나 지내면서도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의 문화코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