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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9: 가이사 아구스도 때에 2: (no 3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9-11-28 10:55
조회
38
● 가이사 아구스도 때

주님이 오신 것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성경의 기록은 누가복음 2장이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눅2:1)

성경은 분명히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를 통치하고 있을 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이사 아구스도는 누구인가?

그는 로마 제정의 1대 황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황제라고 하는 말에 조금 의문을 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오래 전 왕정을 경험한 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돌아섰다. 혹자는 당시 로마의 동쪽에 있었던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벤치마킹 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럴 듯하게 들린다. 원로원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공화정이었지만 로마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외부와 전쟁을 많이 하게 되고, 결국 원하든 원치 않든 권력이 군대를 통솔하는 최고의 군통수권자에게 몰리는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두드리지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율리우스 씨저다. 그는 잠시 로마에서 집정관이라고 하는 선출직으로 공직을 맡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집정관들이 그렇듯이 집정관 직을 그만 두고는 군대를 거느리고 로마의 식민지를 중심으로 총독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가 간 곳은 갈리아, 지금의 프랑스 지역인데, 그는 그곳에만 머물지 않고 서쪽에 있는 현재 독일에 해당하는 게르마니아. 북쪽의 도버해협을 넘어에 있는 브리타니아 등을 정벌하여 로마 제국을 큰 영토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다른 영토를 로마 제국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그곳의 경제적 부를 로마로 가져오는 것이 되었고, 로마 시민들은 율리우스 씨저에 열광했다.

율리우스 씨저의 세확장을 염려한 원로원이 그를 로마로 소환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율리우스 시저는 로마로 군대를 끌고 들어와 정적들을 무찌르고 독재관이 된다. 왕정으로 복귀한 것은 아니지만 원로원이 유명무실해지고 실제적인 왕정의 모습에 대해서 염려한 원로원 회원들이 결국 시저를 암살한다.

시저는 왕은 아니었지만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권력이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시저는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시저가 가지고 있었던 권력을 승계하게 된다. 그는 시저의 오른팔 같았던 안토니우스 장수를 포함한 정적들을 무찌르고 로마 안에서 유일한 권력자가 되었고, 원로원도 그에게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구스투스 칭호를 부여함으로 그는 ‘엠페로’라는 군통수권자가 된다. 이것을 우리는 황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명칭이 어떻든 로마 제국은 당시 어떤 제국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힘이 있이 있었고, 그 힘의 정점에 있는 사람은 바로 가이사 아구스도였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보잘 것 없는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신다. 그의 시작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벌판의 돌멩이 같았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산을 이루고 지난 2000년 동안 세계 속에서 없어지지 않는 나라로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