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2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2:55
조회
49
2002년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갑자기 전화를 받게 되었다. 불광동 성서 침례교회를 담임하는 김우생 목사님의 전화였다. 김 목사님은 2001년 초에 인도네시아 족자에 오셔서 수련회를 인도해주신 적이 있었다. 8월 초에 전교인 여름 캠프가 있는데 와서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모두 다섯 번의 설교를 부탁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시간이 선교한국 기간과 꼭 겹치는 시간이었다. 나는 꼭 초청에 응하고 싶었지만 어렵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내가 말씀을 언제 전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목요일 저녁에 말씀을 전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자 목사님은 캠프는 월요일 저녁부터 수요일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꼭 와주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다.



선교한국은 선교 한국대로 어려움이 있었다. 천안의 백석대학에서 열기로 했는데 백석대학의 강당이 2천명 밖에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모든 대집회를 2부로 돌리기로 했다. 그 이야기는 내가 두 번 설교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 저녁까지는 불광동 성서 침례교회의 전교인 캠프에 참석하고 수요일 저녁에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 아침 일찍 다시 천안으로 가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다시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나는 OMF 대표로 조직위원이었고, 주강사였기 때문에 월요일 점심식사에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조직위원회의 이야기를 들었다. 갈등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점심식사도 참석하기로 했다.



그날따라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나는 비를 뚫고 천안에서 잠실에 있는 집으로 와서 짐을 싸가지고 다시 전교인 캠프로 갔다. 장소는 문산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전체를 빌려서 하는데, 내게는 전혀 익숙지 않은 장소였다. 당시만 해도 내비게이션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빗속에서 잠깐잠깐 차에서 내려 길가의 사람들에게 장소를 물어물어 간 것이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무척 늦게 도착을 했다. 집회는 저녁 7시부터 시작되었는데 나는 7시 10분전에 도착한 것이다.



교회식구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저녁식사를 하라고 해서 겨우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집회 장소의 맨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먼저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앞에는 어른들이, 그리고 뒤에는 중고등 학생까지 모두 한 자리에 있었다. 모두 4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멍했다. 이런 청중에게 어떻게 설교를 하지... 하며 가방을 열었다.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다섯 번 설교를 해야 하는데, 설교 원고를 모두 집에 두고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설교를 한 두 번 한다면 그런대로 꾸려나가겠다. 하지만 다섯 번의 설교를 원도도 하나 없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어른들부터 중학생까지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설교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