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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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83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9
조회
64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어떻게 인도네시아 조이의 재정적 상황을 도울 수 있을까 이것이 늘 큰 고민이었다.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선교사가 현지 사역에 재정적으로 얼마만큼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많다.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현지에 모두 맡기고 손을 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조이는 아직도 재정 자립을 위해서 가야할 길이 멀다. 그냥 손을 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안락사를 시키는 것 같은 일인데. 그것은 과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인가. 고민은 늘 깊었다.



한번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싱가포르에 갔다가 무슨 일로 공항에서 인도네시아 조이 사무실에 전화를 했는데, 믿었던 간사 한 명이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재정적인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났는데 다시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이 다 잘 진행되고 재정만이 문제라면 재정을 일정 기간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도행전을 보니 이방인 교회들이 가난한 유대지역의 교회들을 얼마나 도왔던가. 중요한 것은 여유 있는 교회들이 필요한 교회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33-35)





한국으로 돌아 온 그 주의 토요일에 광교선교회 임원들 기도 모임이 있었다. 회장인 안만식 형제가 갑자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선교회를 시작한지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한 번도 선교비를 인상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 100% 인상을 하면 좋겠다. 할렐루야!



하지만 이렇게 후원금이 인상을 한다고 해도 계속적으로 필요한 사역비를 감당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간사들의 후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매달 운영비고 필요했고, 무엇보다 사무실을 얻는 렌트 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뭔가 항구적인 조치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큐티를 하다가 하나님이 누가복음 17장 5, 6절을 통해서 약속을 주셨다. 그것은 아주 분명한 약속이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 17:5,6)



그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족자의 두 종류의 사람이 계속 교차했다. 족자에 가장 유명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대학생들이요, 또 하나는 관광객들이었다. 족자에만 대학이 100개나 있으면 30만 명의 대학생이 있다. 동시에 족자는 발리 다음의 인도네시아 제 2의 관광지이지만 보로부두르라 쁘람바난 같은 유적을 제외하면 별로 볼 것이 없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그런 유적만을 보면 하루 이틀 만에 족자를 떠나버린다. 족자에 오는 해외 관광객의 평균 체류 기간이 평균 2일이다.



만약 족자에 저녁에도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밤에 관광객들의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라마야나라고 하는 전통 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관광객들 가운데 라마야나를 말 그대로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 매우 느린 자바 발레라고 불리는 느릿느릿한 동작들은 관객들을 십 분 안에 잠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에 비해서 하와이의 폴리네시안 컬쳐 센터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