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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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8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20
조회
56
족자 프로젝트



내가 하와이에 있는 폴리네시안 컬쳐 센터를 처음으로 가본 것은 1988년이었다. 그 해 여름에 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가족들은 나를 위로할 겸해서 오하우 섬의 와이키키와는 정 반대 방향에 있는 폴리네시안 컬쳐 센터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은 오래 전의 일이지만 내게 매우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 컬쳐 쎈터에서는 젊은 대학생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춤을 추었다. 춤의 내용은 매우 건전하다. 모두 남태평양 연안의 부족들인 통가, 피지, 사모아, 하와이, 마오리 족들의 춤을 선보였다. 건강한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것은 화려한 프로들의 춤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그들은 두 시간 동안 춤을 선 보였는데, 이 춤을 구경하기 위해서 관광객들은 55불을 지불하고 있었다.



이런 춤이라면 족자의 조이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는 300개의 종족이 있으며 각 종족마다 자기들의 민속춤이 있다. 그러니 소재가 걱정이 될 염려는 없다. 만약 이렇게 춤을 추는 공간이 생긴다면 조이가 사역을 하기 위한 무대와 다른 공간들이 해결이 된다. 그런 극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그 극장을 뽕나무 극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것은 누가복음 17장에서 따온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 하나는 투자자들이 필요하다. 대충만 계산해보아도 10억에서 15억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나나 인도네시아 조이나 자금이라고는 글자 그대로 한 푼도 없었다. 그리고 극장을 운영하는 경영 팀이 필요하다. 극장 관리도 필요하고, 극장에 손님을 모시고 올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춤추는 데만 열중하면 된다. 극장을 운영과 마케팅은 다른 이야기다.



세 가지 중에서 극장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용을 하는 팀이다. 투자자도 경영 팀도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민속춤을 추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모으기 거의 불가능하다. 마침 조이의 리더들과 이야기 하다가 난도라고 하는 형제가 조이에서 워십 댄스를 하다가 졸업을 하자 숨바라는 섬에 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형제는 타고난 춤꾼이다. 대학에서는 다른 전공을 했지만 그에게는 춤은 삶 그 자체처럼 보일 정도로 춤에 열중하는 형제였다.



졸업을 한 후 족자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공무원이 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삼촌이 하는 농장에서 돼지를 치고 있다고 했다. 그 춤꾼이 돼지를 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 난도를 족자로 데리고 오기로 했다.



난도가 족자로 오자 우선 족자 프로젝트라고 하는 무용 팀 을 구성했다. 족자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종합 대학이 있었다. 그 대학 안에 무용과가 있었다. 족자에서 유명한 춤꾼인 난도는 그곳에 많은 친구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도는 자기 친구들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족자 프로젝트의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