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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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85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20
조회
49
절망 속에서 새로운 소망의 싹이



내가 이렇게 족자 프로젝트를 위해서 애쓴다고 하는 이야기를 족자에 있는 사라 자매가 들었다. 사라 자매는 93년부터 조이에 나오다가 97년 조이 전임사역자로 섬긴 적이 있는 자매였다. 사라 자매는 나에게 뽕나무 극장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한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빡 다웃이라고 했다. 그는 족자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술탄 하멩꾸부워노의 친척이라고 했다.



그의 사무실을 방문해서 그 벽에 수많은 인도네시아의 연예인 사진들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연예인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는 아이돌 가수 같은 잘생긴 젊은 청년들이 여럿 있었다. 빡 다웃과 난도는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빡 다웃은 우리가 기획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빡 다웃과의 관계가 잘 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좋지가 않았다. 아마도 빡 다웃은 내게서 뭔가 금전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 동안 족자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장로님이 매달 100만원씩 이 일을 위해서 헌금을 해주셨기 때문에 그만큼의 재정도 지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 돈으로 몇 명의 전임 무용수에 대한 월급, 그리고 사무실 운영비가 나가면 거의 잔고가 없었다.



난도와 예술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만든 팀이 오랜 준비를 하고 드디어 공연을 했다. 춤들은 화려했다. 하지만 무용 팀은 나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민속 무용이라고 했더니 예술성이 뛰어난 춤을 추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각 지방의 무용을 무대에 올리는대 의상비, 무대장치 비용을 많이 들여서 만들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내가 족자에 있는 상황이 아니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즉각적으로 대응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돈은 나가는데 수입은 없는 상황이 계속 벌어졌다. 그러다가 뭔가를 기대하다 실망한 빡 다웃은 욕설을 포함한 장문의 편지를 내게 보내고 헤어지기로 했다. 허탈했다.



돈은 계속 나가고 수입이 없는 상태를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민속 춤도 내가 기대하는 것과는 점점 달리 결과가 타나났다. 그 해 11월에 족자 프로젝트를 폐쇄하기로 했다. 그런데 8월에 새로운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송원 교회에서 은퇴를 앞두신 파송교회인 송원교회의 오병옥 목사님이 은퇴기념으로 족자에 학생 센터를 짓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내가 족자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선교 위원회 부장이신 양병국 장로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신 분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송원 교회는 내가 그 동안 한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송원교회에서 그런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안 기도하고 진행 했던 이야기를 말씀드리게 되었고, 송원교회도 이 일을 알고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2009년 9월 족자로 갔다. 그곳에서 땅을 구하던 중 우연히 수실로 씨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중국계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기도 했다. 족자의 대학교가 여러 개 있었던 바바르사리라고 하는 곳에 가서 수실로 씨라는 분이 가진 건물을 보게 되었다. 뽕나무 극장을 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였다. 하지만 금액이 너무 컸다. 12억을 달라고 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인 수실로 씨는 우리가 모금을 통해서 자기의 건물을 구입한다는 것을 알고 혹시 자금이 모자라 해약을 하게 될 경우 위약금을 물리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