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9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21
조회
76
16장: 반추-글쓰기



족자비안 나이트



1999년 여름, 호세의 저신장증 진찰을 위해서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진찰이라고 해도 하루 만에 다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려서 다시 며칠 후 선생님과 약속을 하고 만나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그러는 동안 호세는 불광동 수양관에서 열리는 MK들을 위한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 참석한 MK들이 캠프에 부모님들을 모시고 공연을 한다고 해서 그곳에 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와서 워십 댄스를 하는데 정말 좋았다. 그 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워십 댄스는 모두 템포가 느린 것이었는데, 힙팝으로 워십 댄스를 하니 파워도 있고 훨씬 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영성이 있는 춤으로 보였다. 그래서 선교사 자녀들에게 워십 댄스를 가르치던 자매를 만났다.



나는 그에게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춤을 잘 추는데 제대로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니 2주 동안 족자에 머물며 그들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약속대로 다른 한 자매와 함께 다음 해에 족자로 갔다. 그 자매들은 저자의 집에 머물며 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열심히 워십 댄스를 가르쳐 주었고, 저자는 파김치가 될 정도로 하루 종일 수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의 표현으로 자매들에게 ‘립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저녁식사만 끝나면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고, 천일야화의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들이 매일 저녁 계속 이어지게 된다. 때로는 요절복통 땅을 치면서, 때로는 이야기를 하는 저자나 듣는 사람들도 울면서 그 시간은 그렇게 계속 되었다. 이것은 그 주인공 중 한명인 박상수 자매가 족자비안 나이트를 읽고 직접 쓴 부분이다.



워쉽 댄스 사역을 하며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선교사자녀 캠프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마지막 발표하던 날 선교사님을 소개받으면서 족자비안 나이트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불광동의 한 캠프장 식당에서 선교사님에게 족자조이에 워쉽 댄스로 섬겨줄 것에 대한 제의를 받으면서 사실상 한국의 사역을 비우고 오랫동안 나가 있을 수 없었기에 2주란 시간을 결정하고 섬기게 되었다.(그렇게 축복과 은혜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한 2개월 있다가 올 껄 하는 생각도 든다^^)



족자에서 아침저녁으로 뛰었다. 그 더운 곳에서 한국에서 사역하듯이 ... 그때 당시 안 선교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말같이 뛰었다. 한국과 다른 기후에 하루도 못 견딜 법한 스케쥴에 2주간을 쉴 새 없이 뛸 수 있었던 것은 족자 조이에는 무엇인가 놀라운 힘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마다 새로운 힘이 공급되었다. 선교사님께서 직접차려주시는 저녁식사에서 육신의 힘이 회복되었고 식사 후에 들려주시는 족자비안 나이트가 영을 회복시켜주고 충전시켜주었다.

지금도 그때가 그립다. 깔깔깔 웃다가 이내 흑흑흑 눈물을 훔치던 족자의 밤이...

일정을 다 마치고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탈 때 흰 봉투를 주시며 비행기 안에서 보라고 하셨다. 열어보니 족자비안 나이트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하하하! ~이별에 대한 슬픔이 어디론가 사라지고~손 선교사님의 이별에 대한 배려와 재치가 다시 한 번 감동을 주어 더욱 뜨거운 눈물을 가슴으로 흘렸던 기억이 난다.



(후반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