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73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7
조회
98
1990년에 인도네시아에 나가 있어서 2000년에 한국 대표로 한국에 올 때까지 이런 한국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한국에 대표가 살 집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잠실 장미 아파트라는 것만 알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당시 한국 OMF가 국제 본부에 지불해야 할 거액의 채무가 있어서 그것을 갚아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자마자 이사회에서 의논을 하고 아파트를 처분하려고 복덕방에 내 놓았다. 당시는 부동산 시세가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많은 복덕방이 관심을 보였다. 가격은 2억 8천, 혹은 3억까지 호가를 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사고 싶은 사람들이 등기부 등본을 열람한 후 완전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사기를 꺼려했다. 만약 그 당시 모든 것이 완전했다면 3억 정도에 처분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는 처분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처분을 하기 전에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는데, 아, 그것이 만리장성을 쌓는 일보다 더 오래 걸리게 되었다.



아파트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단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물정도 모르고 아는 변호사도 딱히 없고 해서 서울대 법대를 나오셔서 세무사로 일하시는 신용주 장로님께 의논을 했다. 만약 전 소유주인 하명수 할아버지가 지금이라도 인감도장만 찍어주면 소송도 없이 문제는 간단히 끝난다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간단한 일을 놓아두고 지금까지 있었다니 하고 금방이라고 끝을 내기로 했다.



이렇게 저렇게 어렵사리 하명수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을 알아냈다. 하명수 할아버지는 남양주의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내와 나만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법을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제자 중 세무사를 하고 있는 김지웅 씨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그는 자기 차로 우리를 기꺼이 그곳까지 데리고 갔다. 김지웅 세무사는 내가 81년에 처음 세무대학에서 회계학 강의를 할 때 내게서 회계학을 배운 첫 번 째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학생 임원이었고 그와 함께 여름에 20명의 학생들을 인솔해서 강원도 제천으로 농촌 봉사를 가서 함께 고생했던 적도 있고 해서 스스럼없이 부탁을 한 것인데 바쁜 중에도 저를 도왔던 것이다.



2월말 아니면 3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날씨였다. 아파트 초입에 차을 세우고 앞에 있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몇 근 사서 포장을 했다. "선물은 사람에게로 인도 한다"는 잠언 말씀을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