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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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5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2
조회
50
9. 족자에서 만난 지진



눈이 보이지 않던 날



2005년에 5년의 임기의 대표직을 재임명을 받았으니 2010년까지 대표직을 수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2006년 나는 대표를 사임하기로 결정했다. 국제본부에 대표직을 사임하기로 하고 편지를 보낸 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사임을 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동안 내가 대표직을 힘들어 할 때마다 그래도 참고 해보라고 격려를 하던 아내도 잘 했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마음은 무겁고 아픈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른 일을 하기 전에 큐티를 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거의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다. 벌써 35년을 넘게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대학시절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쓰고 큐티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경의 글자가 제대로 보였다.



그런데 그 날 안경을 끼고 성경을 펼쳤는데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갑자기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찔했다. 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면 눈이 나빠진다고 하더니 드디어 그 일이 내게 미쳤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 가슴이 더욱 아팠다. 아무리 글을 읽으려고 해도 초점이 맞지를 않았다.



이제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점자를 배워야 할 지도 모른다. 밖으로 다니는 일도 쉽지는 않겠지. 그러면 집에서 주님과 교제도 더 많이 하고 묵상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자 위로가 되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던가.



성경을 읽기 위해서 거실의 불을 다시 환하게 다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글씨의 초점이 흐리기만 했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남쪽 창가로 가서 커튼을 젖히고 그곳에 앉아 글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도 눈의 초점을 맑게 하지는 못했다. 절망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제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야만 가능하다는 말인가. 절망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몰려왔다.



혹시 안경이 너무 더려워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다시 닦아 보려고 꺼내어 헝겊으로 닦기 시작했다. 그러다 살펴보니 ‘어라. 이건 뭐지?’ 그 안경은 내 안경이 아니었다. 아내의 안경이었다. 아내는 근시가 있어 노안인 내 눈에는 더 치명적이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미 그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실제로 눈뜬 소경을 만나게 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