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55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3
조회
56
발리에서 만난 할머니



2006년 5월 우리는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2003년부터 시작된 족자 세미나에 이번에는 무려 21명이 참여하게 되었다. 족자는 국제공항이 없는 관계로 자카르타나 발리를 거쳐서 들어가야만 했다. 이번에는 발리를 경유하게 되었다. 여행은 시작부터 심상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에 21명이 모여서 탑승수속을 하는데 대박이 터졌다. 우리가 타고 가는 인도네시아 국영 항공인 가루다 항공에 변정수와 전도연이 함께 탈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게다가 갑자기 우리를 불러서 우리 중에 몇 명이 비즈니스 좌석으로 등업이 되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열 명이 넘게 비즈니스로 등업이 된 것이다. 특히 젊은 간사들은 황송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우리는 모두 이번 여행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보여주실 것이라는 기대로 충만했다.



발리에 도착해서 일단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후 1시에 족자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게 되어 있었다. 시내에서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고 우리는 꾸따 해변에 있는 호텔에서 밤을 보냈다.



발리의 아침은 정말 상쾌했다. 모두 아침식사를 하고 세 그룹으로 나누어 발리 구경을 하기로 했다. 모든 세미나 참가자들에게 호텔에서 비행장으로 떠나는 버스가 11시 이전에 올테니 늦지 않게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도 한 그룹의 사람들을 데리고 누사 두아라고 하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갔다가 약속대로 11시 전에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호텔로 돌아온 다른 그룹의 젊은 사역자들이 할머니 한 분을 데리고 온 것이다. 영어도 인도네시아어도 한 마디도 못하는 할머니를 해변에서 만났는데 할머니가 자기가 머물고 있는 호텔이 어디인지를 몰라 길에서 헤매고 있었다는 것이다. 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혹시 할머니에게 도움을 드릴까 해서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혼자 오신 것은 아니고 다른 세 명의 할머니들과 함께 발리를 오셨단다. 이 길을 잃은 할머니가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한국 드라마 촬영한 현장을 보신다고 혼자 아침 6시에 호텔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있던 호텔이 어디인지 생각이 나지를 않으셨던 것이다.



호텔의 이름도 모르고... 영어도 안 되고 인도네시아 어도 안 되는 할머니는 거의 패닉 상태에서 11시가 가까운 그 시각까지 계속 해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 호텔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해변에서 사진을 찍은 젊은이들이 한국사람 같으니까 다가와서 도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젊은 사역자들도 어떻게 도울 길이 없으니 그냥 호텔로 무작정 모시고 왔던 것이다.



아니, 나라고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를 도울 방법이 있는가? 그러는 동안에 우리가 타고 가야할 버스가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만약 할머니 때문에 시간을 지체한다면 우리가 타고 가야할 족자행 비행기를 놓치게 된다. 국내 비행기는 좌석이 그리 많지 않다. 한 두 명이 여행을 해도 비행기를 놓지면 다음 비행기를 탄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우리처럼 30명이 만약 비행기를 놓친다면 이번 족자 세미나는 불가능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떠나야만 했다.



우리가 버스에 짐을 싣고 올라타는 것을 보자 할머니는 내 팔을 꼭 붙들었다.

“나 좀 살려주세요.”

‘주님, 정말 너무 하세요. 아니 이런 상황에 왜 이런 할머니를 보내주시는 겁니까.’

할머니를 보면서 겉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주님이 원망스러웠다. 이 할머니를 그대로 여기 두고 가는 것은 유기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한 순간 할머니를 족자로 모시고 갈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건 유괴가 된다. 정말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