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6-2 맹장이라도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22 05:10
조회
61
6-2 맹장이라도

97년 10월에 특별한 이유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죠이 간사들이 세워졌는데 간사들을 교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 죠이에 간사 훈련을 부탁했다. 한국 죠이에서는 기꺼이 간사 교육을 한 달 동안 해주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의 신임 간사들을 인솔해서 잠깐 한국을 방문하기로 한 후에 파송교회인 송원교회에 한국에 갈 기회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담임 목사님께서 일주일만이라도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한국에서 쉬고 가라고 하셨다.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인도네시아로 돌아 올 때 비행기 안에서 이상하게 식욕이 없었다. 보통 때는 비행기에서 주는 음식을 타박하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음식이 입에 당기지 않았다.

그러더니 쌀라티가 집에 도착해서부터 이상하게 배가 아팠다. 내 경험으로 배가 아프면 설사 한 번 하고 끝나는데 이상하게 설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배가 아픈 것 뿐 아니라 몸 전체가 괴로웠다. 머리도 많이 아팠다. 조금 몸을 추수리고 싶었지만 당시 족자에는 까페를 새로 오픈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러니 쌀라티가에서 휴식을 취할 수만은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하루를 쉬고 죡자로 내려가는 동안 똑바로 앉을 수가 없어 차에 기대어 갔다. 보통 집에서 죡자로 갈 때는 원기를 차려서 생생하게 가고 돌아 올 때는 기진맥진해서 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날은 죡자로 내려가는 내 모습이 쌀라티가로 돌아오는 것 이상으로 지쳐서 가게 되었다.

죡자 집에 도착하자도. 계속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얼마 후에 간사 한 명이 전화를 했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그 전화를 받았다. 간사는 오후에 있을 카페 개회 예배에 대해서 물어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계속 인도네시아 말로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참 이상하다. 왜 인도네시아 말로 할까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인도네시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까페 오픈이라고 하지만 행사를 크게 한 것이 아니라 조이 멤버들이 모여서 돗자리를 깔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기도회에 앉아 있는데 정신이 혼미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나중에 학생들은 내가 너무 감동해서 그렇게 말없이 앉아 있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 다음날은 회계학 강의가 아침 7시부터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지만 여전히 배가 아팠다. 강의가 끝나고 캠퍼스 바로 옆에 있는 베데스다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주말에 자카르타에서 오엠에프 선교사들 수양회가 있는데, OMF 의료 담당자가 내 혈당치를 알아 오라고 했다, 보통은 프로디아라고 하는 검사 클리닉에 가라고 하는데, 그 때는 내가 바쁠까봐 베데스다 병원에 가서 하라고 했다. 베데스다 병원은 우리 학교 캠퍼스와 이웃하고 있어서 걸어서 얼른 다녀왔다.

혈액 검사는 금식을 하고 해야 했기 때문에 굶고 아침 7시부터 강의를 하고 났더니 더 정신이 없었다. 혈액을 채취한 다음 간단한 식사를 했다. 병원 길건너에 있는 식당에 가서 내가 평소에 좋아 하던 인도네시아 식 국밥인 소또 아얌(soto ayam)을 먹었지만 입맛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