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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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싼타도 딸이 있단다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14 21:16
조회
109
4-4. 싼타도 딸이 있단다

싱가포르에서의 신임 선교사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온 것이 1990년 12월 초였다. 사역지는 족자카르타였지만 우리는 인도네시아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반둥에서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했다. 반둥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맞았고, 1년 동안의 언어훈련을 끝내고 크리스마스를 지난 다음 사역지인 족자카르타로 이사를 했으니 반둥에서의 생활은 크리스마스로 시작해서 크리스마스로 끝난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두 달 동안의 신임 선교사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반둥에 도착한 것은 1990년 12월 초였다. 한국 같으면 아는 사람들도 많고 성탄분위기에 어울리는 추운 날씨였으련만 인도네시아의 12월은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우기라 거의 매일 비가 왔다. 이즈음에 오는 비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후다닥 하고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니라 때로는 지루하게 몇 시간씩 내리기도 하는 비였다. 덥고 비오는 12월이니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전혀 기분이 나지 않았다.

처음 반둥에서 이사해 들어 간 곳은 창고로 사용하던 집이었는데, 우리가 나온 후에는 주인이 허물어 버렸으니 그 상태가 가히 짐작이 가리라 생각이 든다.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서 골목은 사람들로 늘 북적였지만 우리 가족은 무인도에 사는 것 같았다. 이웃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과 인도네시아 말로 아직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고,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외로웠는데, 그 중에도 저녁이 되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그런 속에서라도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들게 하겠다고 다운타운에 있는 프레미어라는 수퍼마켓에 버스를 타고 가서 플라스틱으로 된 크리스마스트리를 하나 사려고 했다. 그러나 수퍼마켓에는 변변한 트리가 없었다. 전시 해 놓은 것이 있었는데 너무 싸구려 같아서 살 마음이 나지 않았다.

혹시 전시된 것 말고 창고에 다른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지배인이 안에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들어갔다. 한참 후 창고에서 가지고 나온 플라스틱으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는 일부분을 쥐가 갉아먹었고, 쥐똥이 상자에 가득했다. 싸게 주겠다는 바람에 쥐가 뜯어 먹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지고 간 크리스마스 오나멘트와 싱가포르에서 산 몇 개의 장식을 하고 나니 정말 멋진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다.

우리가족들은 그 크리스마스트리를 좋아 했다. 그제야 가족들은 마치 한국에 있던 집 같이 느끼게 되었다. 그 쥐가 갉아 먹은 부분은 보이지 않게 뒤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전구의 불이 점멸하면서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쥐가 갉아 먹은 크리스마스트리는 우리가 인도네시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 집의 성탄절을 위해서언제가 거실에 서 있어주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을 차려 입고 그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시작한 반둥의 생활도 1년이 지났다. 언어 학교에서 9 과를 마치고 나서 11월 말 경에 우리는 사역지인 죡자카르타로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사역지에 가고 싶어 했다. 우리의 언어 감독자였던 선배 선교사가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를 반둥에서 지내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그저 빨리 족자로 가겠다고만 생각했다가 나중에 그 선배의 제안을 좋게 생각했다. 죡자는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시 낯선 곳이었다. 그래도 반둥에는 1년 동안 있으면서 아는 사람들도 생기고 해서 성탄절을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