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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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허드슨 테일러의 후손들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14 09:22
조회
412
3-4. 허드슨 테일러의 후손들

아카의 생일 파티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을 때 어느 날 점심 식사 시간에 키가 큰 대니얼 홈버그라 내게 와서 물었다.
“창남, 오늘이 아카 형제 생일이라 모두 시내에 가서 아이스크림 파티를 하려고 하는데 너희 가족 모두 가지 않을래?”
나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아무 생각 없이 가족들을 데리고 대니얼을 따라 나섰다. 열 명 정도 되는 외국 형제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버스를 탈 때 우리는 우리가 먹을 아이스크림 값을 가지고 왔어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일잔치에 가도 자기가 먹는 것은 언제나 자기가 내는 소위 더치 페이를 하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서 돈을 가지고 오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뜨거운 적도의 열기 속에 정거장까지 오는 데만도 10분 이상을 걸었다. 다시 갔다 돌아오느니 차라리 아이스크림 파티에 가지 않고 그냥 가족들과 숙소로 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내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는다는 꿈에 잔뜩 부풀어 있어 아이들을 실망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대니얼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혹시 대니얼에게서 돈을 좀 빌 수 있을 지를 물어보았다. 대니얼은 여분의 돈을 가지고 오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아까서부터 내 옆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제이미 허드슨 테일러가 내게 다가왔다.
“창남, 걱정하지 마. 내가 오늘 너희 가족들 아이스크림을 살테니.”
그는 여러 서양 친구들 사이에 아시아 사람들이 초대되었을 때는 그냥 따라 온다는 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는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만에서 그는 일반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겉모습은 외국인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시아에 매우 가까웠다. 그날 제이미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큰 낭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오엠에프에서 나를 감동시킨 것은 허드슨 테일러의 후손들이 계속 대를 이어 주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허드슨 테일러의 아들도 중국내지선교회의 선교사였고, 그의 손자도 중국내지선교회 소속 선교사였다. 그의 증손자도 그리고 고손자도 중국 내지 선교회를 이어받은 오엠에프 선교부의 선교사다.
허드슨 테일러와 아들, 그리고 손자는 내가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증손자와 고손자는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허드슨 테일러의 증손자를 우리는 짐 테일러 혹은 테일러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짐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를 만난 것은 1988년 선교한국에서였다. 그 당시 오엠에프 선교사로 지원을 하고 있던 터라 오엠에프 총재이며, 중국 내지 선교회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증손의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이었다. 첫 번째로 열린 선교한국의 주강사로서 손색이 없는 설교를 통해서 그의 삶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