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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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도교수는 어디 있나? (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02 23:15
조회
147
하기야 이틀 전에도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시내에 가서 군수와 경찰청장을 만나고 세무서장을 만나려고 했는데 마침 세무서장님이 출타 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그냥 마을로 들어 왔다. 이미 세무대학 학장의 공문을 받은 세무서장이 학생들이 있는 숙소로 복숭아 한 상자를 사들고 온 것이었다. 나는 멀리 서장차라 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고 바로 나가서 현관에서 서장을 영접했다.
“저기 트렁크에 복숭아 한 상자 가져왔는데, 좀 들고 와!”

순간 나는 무척 당황했다. 나이가 50살은 넘었을 것 같은 서장이 내게 반말을 하고 복숭아 상자를 들라고 하는 것이 뭐 그리 잘 못 될 것도 없어서 트렁크를 열고 복숭아 상자를 들고 서장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숙소 안에서 세무서장을 맞기 위해서 부동자세로 앉아있었다.

복숭아 상자를 들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서장이 물었다.
“지도교수가 왔다고 하던데, 지도교수는 어디 있나!”
“아, 제가 지도교수인데요.....”
서장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도 그제서야 왜 서장이 나에게 복숭아 상자를 들고 오라고 했는지, 왜 나에게 반발을 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어쩧든 그 날 밤을 무사히 보냈지만 언제 다시 그 청년들이 숙소에 난입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염려가 되었다. 우리는 숙소에만 있지 않고 근로봉사를 하기 위해 마을을 지나가기도 하는 상황이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틀 뒤에 떠나야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학교에 SOS를 쳤다. 상황이 좋지 않아 하루를 당겨서 가겠다고 했다. 학장님은 즉시 차를 보내겠다고 하셨다.

그냥 이대로 도망가듯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나는 교무실에 가서 다시 파출소에 전화를 했다. 농촌 봉사를 왔다가 잘 지내고 간다는 이야기와 돌아가는 길에 제천 시내에 들러서 경찰서장님께 인사를 하고 갈 것인데 대접을 잘 받았다고 이야기 하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는 경찰이 당황하면서 곧 오겠다고 했다. 나는 올 필요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대원들은 짐을 모두 정리해서 버스에 올리고 한 명씩 올라타려고 할 때 산등성이로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라 들렸다. 정문으로 오토바이를 탄 경찰 한 명이 들어왔다. 나를 찾은 경찰은 다급하게 말했다.
“가시는 길에 파출소에 꼭 들려주십시오. 어제 사고를 친 녀석들은 모두 잡아두었습니다.”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경찰은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가 탄 버스를 에스코트 했다. 파출소 앞에 도착하자 경찰관이 계속 파출소 안으로 들어와 달라고 해서 들어가 보았다. 파출소 안에는 전날 술을 먹고 우리 숙소에 난입한 청년 세 명이 무릅 꿇고 손들 들고 벌을 서고 있었다. 그리고 파출소 소장은 우리 대원들 먹으라면 요구르트를 담은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경찰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타면서 나는 사도 바울이 생각났다.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혀 있다가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자결하려고 할 때 도왔던 그 광경이 그려졌다. 상황이 마무리 되고 바울 일행을 방면하려고 하자 바울은 그냥 조용히 떠나지 않았다. 로마시민을 정당한 절차 없이 매질을 했다는 것을 들어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떠났다. 그 당시 사도 바울도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