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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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도교수는 어디 있나?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02 23:15
조회
151
2-1. 지도교수는 어디 있나?

제천 산동네는 여름이라고 해도 해가 훨씬 빨리 지는 것 같았다. 해가 서산으로 거의 넘어갈 무렵 학생들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교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동네 청년 세 명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학교 담을 넘어 숙소로 사용하는 초등학교 교실 창문으로 넘어들어 온 것이다. 성질이 팔팔한 우진이가 동네 청년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일 태세였다.

동네 청년들은 이미 술이 취해있었다. 무엇이 불만인지 모르겠다. 봉사를 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왔지만 동네 청년들의 눈으로 볼 때는 혹시 우리 학생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이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월담을 하고 월창을 해서 자기 동네에 봉사를 하러 온 아이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례한 일이었다.

당시 내 나이가 28살이었으니 세무대학에서 가장 어린 교수였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전임교수로 임용되자마자 맡게 된 것이 새마을부 지도교수였다. 처음에는 새마을부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부서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새마을부에서 일 년 행사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여름방학에 농촌 봉사를 가는 것이었다. 이번에 농촌 봉사지로 선정된 곳은 제천에 있는 어느 산골 마을이었다.

내 생애에 제천으로 농촌 봉사를 가는 것이 두 번째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빛 써클에서도 여름 방학 때 봉사를 간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나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주방에서 주로 감자 껍질 벗기는 일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도교수로 2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인솔해 가게 된 것이다. 70년 대 초반에 비하면 길도 좋아지고 마을계량도 되었지만 도시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20대의 팔팔한 학생들이 모두 나가 길을 정비하고 수로를 정비하는 일을 일주일 동안 하기로 한 것이다.

세무대학 학장님은 봉사하러 간 곳에서 조그만 불상사라도 있을까 염려해서 한 달 전에 벌써 제천 군수, 제천경찰서장, 제천세무서장 앞으로 공문을 보낸 바 있었다. 세무대학 스쿨버스로 우리가 봉사하려는 지역으로 오기 전 시내에 있는 군수와 제천 경찰서장을 만나 인사를 한 바 있었다. 마침 경찰서장님은 내가 살고 있던 신림동이 집이라 자기 집에 한 번 놀러오라며 명함까지 내주었다.

봉사하려는 지역에 들어와서도 이미 관내 경찰서에도 인사를 하고 이장님께도 인사를 드린 바 있어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협조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도 동네 젊은이들이 보기에 대학생들이라고 뭔가 자신들이 보기에 좋게 생각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식으로 저녁에 숙소에 난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일단 우리 학생들에게 절대로 물리적인 충돌은 하지 말라고 자제를 당부했다. 그리고 교무실로 가서 파출소에 전화를 했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즉시 와서 상황을 정리해달라고 했지만 파출소 경찰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여기고 오지도 않았다.

상황을 내가 정리해야 한다. 만약 술을 마시고 온 청년들과 우리 학생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있다면 지도교수의 책임도 막중하다. 마을 청년들에게 지도교수로서 부탁을 하는 것이 제발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밝은 시간에 와서 대화를 하자고 신신당부를 했다. 청년들은 처음에 내가 지도교수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29살 약관의 나이였고, 더욱이 정장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학생들과 똑 같이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나를 어떻게 교수로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