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2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36
조회
105
반면 사도행전 11장 20절에서 안디옥으로 간, 동일한 흩어진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헬라인들에게 “주 예수”를 전파했다. 여기서 “주”(kurious)란, 당시 헬라인들이 헬라의 신들에게 붙인 경칭이다. 유대 배경을 지닌 흩어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헬라 지역의 신들에게 붙이는 경칭을 사용해서 증거 하려고 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쳤던 앤드류 월스 교수는 상징 빼앗기 (symbol theft)라고 표현했다. 이교도들 사이에 있던 종교적 용어를 갖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가져다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데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이미 자신들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 8장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할 때의 모습과 11장의 안디옥에 있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를 비교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안디옥으로 파송된 바나바



사도행전을 조금 더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흩어진 사람들이 사마리아와 안디옥에 복음을 전한 결과로 세워진 교회를 확인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가 보낸 사람들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타문화 사역에 얼마나 예민했는지를 알 수 있다.



위 표에서 보는 것처럼 사마리아에 세워진 교회를 확인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행 8:14). 반면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이 교회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는 바나바를 보냈다(행 11:22). 바나바는 헬라 문명의 본고장인 구브로, 즉 오늘날의 키프로스 섬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다(행 4:36-37). 따라서 그는 이방인들에 대한 이해가 높았을 것이다.



과연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있는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행 11:22-23).



한동안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에 도착해서 보았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었을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카리스”(charis)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인데, 영어로는 “grace”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고맙게 베풀어주는 신세나 혜택으로, 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베푸는 시혜를 말한다.



그러나 카리스라는 단어를 그런 뜻으로 이해하면 여기서는 문맥이 매끄럽지 않다. 카리스라는 단어가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경우는 이성에게 끌리는 것과 같은 매력을 뜻할 때다. 요즘 말로 “뿅 갔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11장 23절을 다시 표현한다면 바나바는 안디옥에 와서 할례도 받지 않고 율법도 모르며 안식일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온 것을 보고 “뿅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들 하지만, 만약 8장에서 사마리아 교회를 파악하기 위해서 간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이 안디옥에 갔다면 어떻게 느꼈을까? 아마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