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9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10
조회
69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가장 대표적인 사역지는 고린도와 에베소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장기로 머물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이 떠난 후 교회는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짧은 기간 동안 사도 바울은 계속 이동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문제도 많았겠지요. 자신이 섬기던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들을 때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느꼈을까요. 무척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제가 세무대학을 그만 둔다고 할 때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제가 그만 두면 운동권 아이들이 기독학생회를 접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기도하면 펑펑 울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 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고후11:28-29)



사도 바울이 2년 가까이 섬겼던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고린도 전후서를 통해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는 분열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은사 문제로 꽤나 시끄러웠고, 성찬 문제도 복잡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성적인 문제도 교회에서 매우 골치 아픈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비교적 사도 바울 사역의 초기에 주로 사역했던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할례 문제가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주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대 배경을 갖고 있던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계속 주장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초기 사역지 가운데 하나였던 빌립보 교회에서는 두 명의 지도자 사이에 깊은 갈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서로 관용을 베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작정한 헌금을 보내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헌금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 합니다.



동시에 교회들마다 사도 바울의 사도성을 가지고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를 계속 변명하며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권면이나 격려를 위해서 사역자들에게 보낸 편지도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도 바울은 문서 사역을 한 셈이네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이 모든 것들이 빠른 교회 개척 운동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