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93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10
조회
68
제가 당시에 제자에게 썼던 편지의 내용도 남아 있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그대로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썼는지에 대한 약간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형제가 수련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네. 하지만 보내 준 편지의 내용 중에 내가 그 동안 자유의지만 강조해왔는데 앞으로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도 더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하는 부분에는 동의가 되지 않아. 동의가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왜 자네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격앙된 기분으로 편지를 읽자마자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는 신학적 이론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네들이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 수련회에서 어떤 내용의 강의를 듣고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뭐 이런 식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아마도 네 페이지 다섯 페이지에 달라는 긴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당황한 제자가 다시 자신을 변호하는 장문의 편지를 다시 써보냈고 저도 감정이 누그러진 후 제자와 만나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제 강변역에 위치한 두란노 서점에 들러서 책을 보다가 양용의 교수님이 쓴 히브리서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를 양용의 교수님은 누구라고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양용의 교수님은 히브리서의 기자가 사도 바울이라고 하는 견해에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양 교수님이 히브리서의 기자가 사도 바울이 아닐 것이라고 하는 데에 한 표를 던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대로 제가 인용을 해보겠습니다.



히브리서가 바울의 저작인 가능성이 희박한 주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 작품이 익명으로 되어 있는 점은 바울의 저작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2) 일찍이 오리게네스도 지적했듯이, 히브리서의 언어는 바울서신들에 비해서 훨씬 헬라적이고, 논증 방식은 더 조직적이며, 바울의 특징적 성향인 일탈적 삽입이나 급작성 등이 히브리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등입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쓴 표현 하나를 볼까요.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갈4:20)



이런 표현이 사도 바울의 서신 도처에 있습니다. 저는 사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 사도 바울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서 좋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이런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차분하다는 것이지요.



저는 앞으로 다섯 권의 책을 더 쓰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네 권의 책을 썼고, 앞으로 다섯 권의 책을 더 쓰려고 합니다. 주제는 다르지만 제가 쓰는 책은 독자들이 제 이름을 가리고 읽으라고 해도 제 책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 책이 이론적인 책이 아니라 현장 중심의 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 제 이름으로 현장 중심의 내용이 아닌 이론 중심의 책을 낸다면 제 것이 아니구나 하고 쉽게 생각을 하겠지요. 오늘은 조금 길게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