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90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10
조회
86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고 가톨릭교회는 매우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교회 안에는 여전히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 일하는 구조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원 같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 쏘달리티 구조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수도원이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대단합니다. 제수이트 수도원은 회원들은 아시아에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쏘달리티와 모달리티의 모델은 불교의 구조 안에도 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승려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이 있습니다. 이판승이란 평소에 산 속에 있는 절에서 도를 닦는 승려를 일컫는 말입니다. 한편 사판승이란 속세의 절에서 일반 신도들이 생사화복과 관련된 일들을 맡는 승려들을 말합니다. 이판승은 속세에 물들지 않지만 사판승은 세속에 물들 가능성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이판승이 사판승처럼 행동한다는 말로 불교가 매우 타락한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가톨릭교회 내에도 세속 신부 (secular priest)와 수도신부(regular priest)로 나뉩니다. 세속 신부는 일반사회 안에 있는 성당을 담당하는 신부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영성은 수도원에서 수도하는 수도승들을 중심으로 이어져왔습니다. 예를 들어 성당을 맡는 신부가 결원이 되었을 때 가톨릭교회는 다른 성당의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고 수도원의 수도 신부를 임명합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이런 이중적 구조 중에서 쏘달리티에 해당하는 수도원 제도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개신교에서 이 구조를 버린 이유는 당시 타락한 수도원의 역기능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수도승으로 출발했던 마틴 루터와 그의 아내가 된 사람도 수녀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가톨릭교회의 타락의 중심에 수도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제도를 가톨릭교회로부터 가져오면서도 수도원 제도는 버렸습니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반둥으로 가톨릭교회들이 수도승들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선교를 하는 동안에 유럽에만 머물게 됩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이 되어 개신교 선교사들을 전세계에 파송하는 선교의 위대한 세기를 맞게 됩니다. 그 중심에는 윌리엄 캐리가 있었는데 그는 선교단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도구라고 설파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해외 선교를 위해서 앞다투어 선교단체를 만들게 됩니다.



윌리엄 캐리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선교사들이 처음에는 해안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내지 선교회를 만들어 내지 선교시대를 선도해 나갑니다. 그 뒤를 이어 아프리카의 내지로 들어가는 여러 단체들이 생겨납니다.



이런 단체들의 목적과 기능을 파송국의 목회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인도 선교사로 가겠다고 했을 때 한 목사는 윌리엄 캐리를 향해 “젋은이, 앉게!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자네가 가지 않아도 인도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을 것이야!” 그 목사의 말이 매우 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맞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