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4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9
조회
52
몇 년 전에 OMF에서 출간한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고 하는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오주에에서 사역하던 조안 웨일즈라고 하는 선교사는 그곳에 간지 일 년도 되지 않아 공산당들의 방해를 받게 됩니다. 이제 얼마 후에 쫓겨날 것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는 계속 동네의 소녀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증거 한 복음의 씨는 혹독한 문화혁명의 기간에도 죽지 않고 37년 후 조안이 다시 자오주에를 방문했을 때 그대로 살아 열매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제자들을 전염성 있게 만듭니까?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오히려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흩어진 사람들 대부분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건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전염성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감격입니다. 우리에게 이 감격이 늘 있느냐가 우리를 전염성 있게 만들기도 하고 냉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교회를 방문해서 전도를 많이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많지요. 시간이 없다. 성경을 잘 모른다.. 등등.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전도폭발훈련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이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전도 훈련을 받는 것이 우리를 전염성 있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무실 옆이 설렁탕 집 깍두기가 맛있다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그 집 깍두기가 맛이 있더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슨 깍두기 폭발 훈련을 받아야 깍두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나요. 그저 먹어보았다는 것이 우리가 깍두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 그로 말미암아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예수를 전염시킬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감동이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친구의 부인이 가을 동화 마지막 편을 보면서 친구와 하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친구는 브라질에 사는 모양입니다. 부인은 친절하게 자기가 보고 있는 가을 동화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를 해주더니 비디오 녹음을 해서 전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끝까지 봤지만 그저 십대 아이들의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한 고등학교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를 좋아하고 여자 아이가 병이 걸려서 죽게 되자 자기도 자동차에 치어 자살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 정도의 이야기라면 조선 시대에도 있었던 이야기지만 드라마에 감동을 받은 친구의 부인은 브라질에 있는 친구에게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더군요.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를 무슨 스킬(skill)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