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38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8
조회
70
바나나와 사울의 관계



중학교에 들어가서 관포지교라는 사자성어를 배웠습니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관중과 포숙아라고 하는 사람의 우정 이야기를 일컬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관중과 포숙아에 관한 고사를 직접 읽게 되었습니다.



제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두 사람이 전쟁이 나자 왕의 아들들을 각자 데리고 다른 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둘이 제나라로 돌아오게 되고 포숙아가 데리고 있는 왕자가 후에 제환공이 됩니다. 관중은 옥에 갇히고 포숙아는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포숙아는 관중의 능력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왕이 누구를 등용하면 좋겠느냐고 했을 때 포숙은 자기 친구인 관중을 천거합니다. 그리고 관중은 재상의 자리에 올라 제환공을 중국의 패자가 되게 합니다. 동등한 우정관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불평등한 관계입니다. 젊을 때 두 사람이 장사를 한 적이 있는데 관중이 늘 이윤을 더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포숙에게 불공평한 것 아니냐고 하면 그에게는 노모가 있어 더 가지고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관중은 포숙을 가리켜 “나를 낳아준 이는 어머니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입니다.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성경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우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양 사람들이 관포지교를 말한다면 서양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말합니다. 자기 아버지 사울 왕이 그토록 미워하는 다윗을 요나단은 계속 보호해줍니다. 다윗이 왕이 된다면 자신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다윗이 성공하도록 돕습니다. 아름다운 우정 뒤에는 반드시 불공평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정확하게 공평하게 한다며 아름다운 우정이 아니라 거래 (transaction)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나바와 사울의 관계도 이 못지않은 불공평한 우정관계로 보입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참여하고 믿는 자들을 잡으러 혈안이 되어 다녔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에게는 기피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석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악수를 청했을 때 선뜻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인정해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행9:26-27)



그러니 포숙이 없이 관중이 없고, 요나단이 없이 다윗이 없었던 것처럼,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둘이 다시 안디옥에서 좋은 동역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히 드림 팀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연합입니다. 한 사람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두려움 없이 나가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세워주는 사람이니 환상의 팀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두 사람의 사역을 통해서 안디옥 교회는 나무랄 것이 없는 교회로 커가는 느낌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