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37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8
조회
88
사도행전 11장 2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라는 말은 사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할 때 과연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이방인으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에서 무엇을 보았다는 것일까요?



원래 ‘카리스 (kharis)’라고 되어 있는 은혜라는 단어는 매우 광범위한 용어입니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처럼 위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은전 같은 것이지요.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등을 말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뜻을 사도행전 11장 23절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그리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카리스라고 하는 단어의 또 다른 용법은 다른 이성에게서 느끼는 매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멋진 배우나 모델을 본다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그런 매력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1장 23절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에서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한 마디로 하면 뽕 갔다는 이야기겠지요. 아마도 바나바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교사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한 번은 어느 모임에서 인도네시아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데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변명하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그럴 만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있는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그런 반응을 보였겠지요. 제 옆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손 선교사님이, 인도네시아를 정말 사랑하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그것이 선교사가 가지는 마음이 아닌가요.



아마도 율법에 매여 사는 순수한 유대 지도자들이 와서 보았다면 ‘이거 개판이네!’, 혹은 ‘갈 길이 머네!’라고 느꼈을 법한 상황에서 바나바는 전혀 다르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구브로에서 태어나고 자란 바나바는 이방인들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대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바나바의 사역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곳 상황을 사도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안디옥에 남아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사역자가 더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쉽게 생각했다면 예루살렘 교회에 편지를 해서 이곳 사역이 성장해서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한 명 보내주십시오.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머릿속에 그런 상황에 가장 어울릴만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마침 사울은 안디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신의 고향 다소에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그곳에 가서 사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함께 사역을 하게 됩니다.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11:2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