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40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8
조회
79
● 쏘달리티와 모달리티



모달리티와 쏘달리티 모두가 하나님이 선교를 위해서 만든 기관이라고 랄프 윈터는 전제를 합니다.

모달리티(modality)란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는 지역교회라고 하는 것이 좋겠지요. 반면 쏘달리티(sodality)란 지역교회 밖에서 선교를 전담하는 기관을 말합니다.



모달리티는 본질적으로 안정과 성장을 추구합니다. 대부분 목회의 현장이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하지만 쏘달리티는 안정과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는 기관을 말합니다.

랄프 윈터 박사는 이것이 신약의 초대교회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마태복음 23장을 들어서 이미 유대교 안에 있었던 두 개의 구조였다고 말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23:13)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에 시나고그라고 하는 회당을 지어서 생활했지만 동시에 열심히 유대교 개종자들을 모으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시나고그에서는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신앙적이 활동의 중심이 된 반면 밖으로 돌아다니며 유대교의 전파에 힘썼던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선교사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교회의 구조 안에는 이런 쏘달리티와 모달리티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모달리티가 교구를 담당하는 성당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쏘달리티는 수도원 같은 곳을 말합니다. 따라서 가톨릭 사제들은 두 종류의 사제로 나누어집니다. 소위 정규 사제(regular priest)와 세속 사제(secular priest)입니다.



정규사제들은 지역의 교구를 맡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에서 주로 묵상과 기도 말씀 연구에 전념합니다. 그러다가 지역 교구를 맡고 있던 세속 사제의 결원이 생기면 보충을 할 때 정규 사제로 이루어집니다. 정규 사제들이야말로 가톨릭 영성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 구조는 어찌보면 불교의 구조와도 비슷합니다. 불교에도 승려들 중에는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이 있습니다. 이판승은 주로 깊은 암자에서 선을 하며 정진하는 승려들을 말하는 것이고 사판승은 속세에 있는 절을 중심으로 중생의 필요를 채우는 승려들을 말합니다. 이판승들은 속세와 단절되어 있지만 사판승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판 사판이네라고 하는 말은 이판승이 사판승처럼 산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이런 쏘달리티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중세의 가톨릭으로부터 나올 때 수도원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면에 너무 강조를 한 나머지 쏘달리티와 모달리티를 통합한 형태로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지역교회가 점점 모달리티의 모습으로 가면서 쏘달리티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18세기 말 윌리엄 캐리를 중심으로 해서 시작된 개신교 선교단체들이 이런 쏘달리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들에게 더 깊은 영성이 요구되는 지도 모릅니다. 일전에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 교회 영성의 최후의 보루는 선교사들이다.”



부담스러운 말이지만 쏘달리티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주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안디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모달리티와 쏘달리티의 협력의 대표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영성을 토대로 교회들에게 귀한 서신을 보내어 경책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