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28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6
조회
63
● 스데반의 죽음

이 세상의 주요 종교라고 하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등이 있겠지요.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주로 동 아시아에 존재합니다. 힌두교는 인도와 동남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중심은 언제나 갠지스 강입니다. 이곳으로 순례를 갑니다. 무슬림들은 중동을 중심으로 해서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유럽 쪽으로 폭넓게 퍼져있지만 여전히 그 중심은 메카입니다. 유대교는 물론 예루살렘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명령에 따라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 중심이 없습니다. 최근에 에디버러 선교대회 100주년 기념위원회가 발간한 지도에 따르면 이제 기독교의 중심은 아프리카쪽으로 옮겨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아프리카에만 몰려 있는 것이 아니고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쪽으로 고루 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유래한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지, 예루살렘의 중심성을 벗어 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이 생각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초대교회의 탄생일로 기록되고 있는 오순절 성령 사건이 나던 상황만 해도 예루살렘에 순례를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디아스포라들에게도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땅은 하나님과 관계된 땅이 아닙니다. 여전히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중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이 당시 유대인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신앙하게 된 스데반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힘있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고향을 버려두고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루살렘까지 와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게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약의 모든 내용을 조목조목 따지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지고 시작을 하는 것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딱히 논리로 반박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저 듣고만 있으려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요?



아브라함이 언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가? 그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강 건너. 즉 티그리스 강 건너편 하나님의 약속의 땅, 예루살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에 의해서 놀랍게 쓰임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있던 곳에서가 아닙니다. 애굽에 팔려가서였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 있었던 그의 형제들은 그를 팔아먹었는데요. 모세도 하나님의 소명을 어디서 받습니까? 약속의 땅에서가 아니라 이방 땅에서 받게 됩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의 행적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 이렇게 됩니다.

"야, 이스라엘 자손들아, 하나님이 꼭 이곳 예루살렘에서만 말씀하시냐. 아니다. 하나님은 성전이라고 하는 곳에 매여계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더 크신 분이다."



이 생각은 당시로 보면 거의 쿠페르니쿠스적 발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유대인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부분을 부정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의도하신 것이라고 하는 말 앞에 유대인들이 이를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요?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이를 죽이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사도행전의 이런 부분을 정말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