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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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까 이야기 6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09 04:26
조회
37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있을 수 있는 기한이 2005년 8월에 만료되어 나는 인도네시아로, 앤튼은 스리랑카로 떠나야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 근로자들은 3년만 근무 할 수 있습니다.)저는 안똔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못해 슬펐습니다. 마지막 날 밤 저와 안똔은 아버지 집에 머물렀고, 다음날 아버지는 우리를 인천공항에 태워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공항에서 헤어졌습니다.



슬펐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나라로 돌아가면 분명히 예수님도 날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에선 아마도 교회에 다시 가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뿐 아니라, 교회도 제가 사는 곳에선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몰래몰래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 애썼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안똔의 상황도 심각했습니다. 안똔은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저는 매일 울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슬퍼하는 것을 숨기는 것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와 안똔의 관계에 대해 모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 안똔은 신장이식수술을 받았고, 다행히도 수술이 잘 되어서 2년 뒤에 저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똔이 인도네시아로 와서 결혼한 후 한 달만에 저희는 스리랑카로 건너갔고, 그 곳에서도 교회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전 세례를 받아야 했지만, 여전히 이슬람을 떠나는 것에 대해 무거운 마음이었습니다.



이슬람을 떠나게 되면 가족을 잃어야 했습니다. 매일같이 마음이 슬펐다. 제가 기독교인이 된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날 싫어하게 될 것이고,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될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난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