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5-1 라바라바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17 15:53
조회
66
5-1 라바라바

두따와짜나 총장님은 강의를 인도네시아어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 년간 언어를 배우도록 배려를 해주셨지만 일 년간 배운 인도네시아어로 강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세 클래스를 가르쳤기 때문에 한번 실수를 하면 다음 클래스에서는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 언어진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집에서 강의 준비를 하고 강의실에 들어서도 여전히 실수가 나왔고, 실수를 할 때마다 학생들은 여지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루는 손익계산서를 강의하고 있었다. 손익계산서에는 모든 수익과 비용을 적어서 그 차이를 당기순이익으로 나타내주는 것이지만 정보의 유용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이익을 몇 가지로 구분한다. 이것을 구분표시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매출과 매출원가를 대응시켜서 매출총이익이라고 표시를 하고 이 매출총이익에 영업비용과 관리비용을 대응해서 영업이익이라고 하고 여기에 금융거래로부터 나타나는 수입이자와 이자비용을 가감하면 경상이익이라고 한다.

이익은 인도네시아어로 ‘라바’ (laba)라고 한다. 당기순이익이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이익이 나타난다고 설명을 하고 싶었다. 인도네시아어는 복수는 언제나 단어를 중복해서 사용하면 된다. 물건을 바랑이라고 하는데 물건들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바랑바랑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니 이익들이면 당연히 라바라바라고 하면 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손익계산서의 샘플을 보여주면서 손익계산서라 이렇게 라바라바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학생들이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고 웃기 시작했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 서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조금 있다가 라바라바가 거미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수업을 마치고 전산학과 옆을 지나는데 전산과 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나는 힐끗 보면서 라바라바라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실수가 내가 가르치는 클래스에 들어오는 학생들만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의 전교생이 아는 것 같았다.

실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실수를 하는 것도 자긍심을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다. 다음 시간에 클래스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부탁을 했다.
“제가 외국인으로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이 서툴러서 여러분들에게 불편을 드리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여러분이 내 말실수를 듣고 웃는 것도 좋지만 저를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내가 실수할 때마다 종이쪽지에 적어서 수업이 끝날 때 제게 제출해주세요. 그러면 추가 점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내가 실수할 때 웃기보다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이런 방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이 있었다. 우선 학생들이 내가 하는 실수에 대해서 훨씬 더 관대해졌다. 나는 어떤 실수를 하는지 잘 몰랐는데, 학생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또 학생들과 좋은 래퍼가 형성되었다. 수업 중간에 휴식을 할 때나 수업을 마치고 나서 학생들은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