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4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40
조회
102
● 조교의 당돌한 질문



한 학기가 거의 다 지날 무렵에 생긴 일이다. 기말고사를 내기 위해서 캠퍼스에 갔는데 조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인 여학생 조교는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손 교수님, 혹시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다 내셨나요?” 그렇지 않아도 기말고사 문제를 내기 위해서 학교에 갔던 것이다. 하지만 조교가 묻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안 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조교는 약간 쭈빗거리더니 똑똑하게 말했다. “이번 기말고사를 제가 내면 어떨까요?”

기가 막혔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누르며 물었다.

“왜, 자기가 문제를 내겠다는 생각을 했나요?”대답이 더 기가 막혔다.

“학생들이 교수님이 강의하는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해서요.”



“이런 싸가지가 있나?”

그 조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1년 동안 배운 인도네시아 어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씁쓸한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그냥 내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아, 대학교 4학년에 다니는 조교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그 다음날 학장에게 갔다. 그리고 그 조교를 다음 학기에는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학장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어떻게 그 일을 다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 자존심과 관련된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상기된 얼굴로 그냥 잘라달라고 말했다. 이것이 인도네시아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런 일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힘든 것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보려는 노력을 해보았다. 하지만 언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학생들이 하는 아주 세밀한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질문도 하고 설명도 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이제 사역은 포기하고 회계학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얼마 후 딸아이의 질문으로 깨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