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1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3
조회
105
Ch 3. 담대한 증거/고난의 힘/하나님의 전략/기도의 의미



고난의 의미



사도행전의 1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장소적 제약을 가지고 벌어지는 이야기들입니다. 마지막 7장에서 스데반이 긴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합니다. 순교의 사건이 핍박을 가져오고 8장에서는 사람들이 흩어져 가면 선교를 하게 됩니다.



이들에 의해서 사마리아에도 안디옥에도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깁니다. 이 교회들은 매우 다른 환경 속에 있지만 공통의 DNA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생겨날 교회가 공유해야 할 DNA가 무엇인가를 사도행전의 첫째 파트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만약 선교만이 중요했다면 1장에서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즉시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가야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루살렘에 마치 정착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분들이 지나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선교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핍박을 허락하셨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아 이게 아니구나 하고 정신 차리고 선교를 하게 되었다.'

글쎄요~ 저는 그 말에 그렇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핍박은 기독교 신앙의 순수함을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허락하시는 것이지 선교하라고 하는 도구로 주신다는 신학적 논거를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중국 교회의 혹독한 시련, 캄보디아 교회가 겪은 혹독한 시련, 아니,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구한말의 탄압, 그 후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침략 하에서 겪었던 박해가 모두 선교하라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엠에프에서 발간한 책 가운데 중국의 혹독한 시련을 감당한 성도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특히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정금을 만드는 유일한 길은 금을 높은 온도에 달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또 제거되고.. 그래서 신앙은 순수해 지는 것입니다.



일전에 학원사역을 하는 리더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한국 교회의 잘못된 모습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기의 안위만을 아는 타락한 개인주의적인 복음으로부터 총체적 복음으로, 새로운 세대들을 향한 창의적인 전도의 회고,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 등에 대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기도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왜 생기는 것입니까? 이제 한국 교회에서 고난이 없어졌습니다. 핍박이라는 말은 이슬람권이나 공산권에서만 들리는 이야기지 우리와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사람들에게 순수함을 읽은 이상한 집단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하겠지만 초대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것입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행5:11)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자신들은 믿지 않지만 믿는 사람들이 두려워 할 만큼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전도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공동체와 핍박이 첫째 파트에서 주가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 사도 바울이 예수를 믿어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행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