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5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02
조회
58
● 12장의 예루살렘 이야기



3부의 주제가 바나바와 바울이 보여주었던 사도 중심의 선교 모델, 즉 바-바 모델이지만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사 팀을 결성한 이야기를 3부가 아닌 2부에 의도적으로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대비시키려는 것은 풀뿌리 선교와 바나바와 바울과 같은 사도 중심의 선교 단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두 개의 모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엄밀하게 말해서 바나바와 바울과 같은 사도 중심의 선교 모델이 풀뿌리 선교 운동의 결과였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개의 모델을 대비시키는 것이 중요한 주제이면서도 동시에 두 개의 모델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사람이 함께 사역을 하게 된 것을 3부의 시작으로 서술하기보다는 2부의 주제인 풀뿌리 선교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서술하였던 것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두 사람이 안디옥에서 아름다운 동역을 하고 있을 때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언뜻 보면 이 사건이 선교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고 의아해 할 만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안디옥에서 활동하던 어떤 예언하는 사람의 예언으로 시작됩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11:27-30)



아가보라고 하는 예언하는 사람이 예언한 대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광범위한 기근이 들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클라우디오 때라고 성경이 말하는 기간은 대략 AD 41년에서 54년까지 통치를 했습니다. 제 추측은 아마도 클라우디오 통치의 중반부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AD 48년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기근이 들어도 주로 무역을 하던 안디옥에 비해서 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안디옥은 당시 인구 50만의 대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오리엔트 지역에서 에베소를 제외하고는 가장 부유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기로 합니다. 이 상황만 보아도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선교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선교를 하면 모 교회로부터 선교지 교회에 돈은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선교지 상황의 교회들이 돈을 모아서 모교회로 보내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된 두 명의 사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바나바가 가게 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는 원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였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의 기피인물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가 죽어 마땅하다며 증인의 역할을 감당했었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제 상상력을 조금 발휘한다면 바나바가 사울을 일부러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워낙 바나바는 다른 사람들을 권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지요. 그의 이름이 원래 요셉인데 권위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바나바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사울을 데려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이름값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마도 예루살렘에 일부러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결론은 단순히 그런 이유를 뛰어넘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신 것 같습니다. 그 특별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 보면서 다음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