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4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9
조회
125
흩어진 사람들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문화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가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소위 키리오스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수용자 중심의 사역을 하려고 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이교도 지역에 들어가서 사용하는 소위 상징 빼앗기 (symbol thef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용어들 가운데 이런 상징 빼앗기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의 이름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하나님이라는 신의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토착적인 신의 이름을 가지고 창조의 하나님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이미 6장에서 자세히 기술한 바 있습니다만 여기서 조금 더 부연 설명할 필요를 느낍니다. 상징 빼앗기를 하지 않는다면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낯선 종교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복음의 확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최근 몽골에서 있었던 경험이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몽골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신의 이름으로 보르항이라고 하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보르항이라고 하는 토착신의 이름을 하나님에 해당하는 단어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유르텅칭 에젱이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유르텅친 에젱이라는 뜻은 우주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천지를 만드시고 지금도 하늘과 땅을 통치하시는 분에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몽골 사람에게 매우 낯선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행이도 몽골 성도들 가운데 과감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보르항이라고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를 통해서 몽골 안에 복음의 돌파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결국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토속적인 이름인 보르항으로 부르는 것에 동의를 했다고 합니다.



유르텅칭 에젱이라고 하는 이름이 훌륭한 이름이고 선교사들이 혼합주의를 두려워 해서 전통적 종교에 관련된 보르항이라고 하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돌파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가 선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데 흩어진 사람들은 이런 위험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문화로부터 괴리되지 않고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천 년 전에 이렇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