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47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9 00:00
조회
126
(4) 직업을 가지고 다닌 사람들



흩어진 사람들을 타문화 사역을 한 선교사들이라고 할 때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할 일은 이들을 후원한 사람들이나 교회가 따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나오는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고 떠납니다. 하지만 파송이라고 하는 형식을 거치지 않고 흩어져 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타문화 사역을 하는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면서 다녔을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전통 속에 답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고관대작이요, 부요한 집안이라고 해도 자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업을 갖도록 훈련을 했습니다. 한 번 제자들의 면면을 살펴볼까요? 베드로는 어부였고, 마태도 세리, 심지어 예수님도 목수였습니다. 아, 이분들은 사회적 신분이 낮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요? 그렇다면 사도 바울처럼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 예루살렘에 유학을 올 수 있는 가정 출신은 그냥 놀고먹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8장에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한 부부를 만나는 이야기를 적도 있는데, 이들 부부와 동업을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고 하는 이 유대인 부부와 사도 바울이 같은 업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 업이 장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소위 텐트 메이커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텐트 메이커라는 말은 직업을 사용해서 선교를 하는 매우 포괄적인 말입니다. 특히 회교권이나 공산권 등의 지역에서 선교사라고 하는 신분으로의 진입이 불가능할 때 직업을 통해서 그런 지역에 들어가 선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 경우도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할 때 회계학 교수라고 하는 업을 가지고 사역했기 때문에 텐트 메이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텐트 메이커라는 말이 자비량이라고 하는 말과 혼동되어 사용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비량이라고 하는 말은 자기의 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으로 충분히 살아가는 선교사를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는 동안 텐트 메이커라고 말 할 수는 있지만 자비량 선교사는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약간 헛갈립니다. 그는 자비량해서 자기 선교 팀을 위해서 일해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자기의 사역을 위해서 규칙적으로 혹은 불규칙하게 후원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우리의 주인공 흩어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자비량 선교사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자비량 선교라는 말도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자비량 선교를 선교부에서 생활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금을 해 오는 것을 자비량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조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쩧든 흩어진 사람들은 저비용 고효율의 선교를 한 사람들이 틀림없습니다. 이들은 어떤 교회의 파송을 전제로 간 것이 아닙니다. 매우 자연발생적으로 흩어져갔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선교적 운동도 해내지 못했던 선교의 열매를 가져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