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두 가지 모델 25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55
조회
127
● 헬라파의 등장



4방 후반부와 5장 초반부에 나타난 이 사건은 후에 사도행전 6장에서 일어난 과부의 이야기와 서로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6:1-6)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들로 하여금 일부러 구제에 빠지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커지고 행정력은 따라가지 못하면서 불만이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2장부터 5장까지 그렇게 아름다웠던 공동체의 모습 속에도 이런 일들이 동시에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한데 어쩌면 이것이 교회의 진면목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문제를 교회가 어떻게 해결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맞습니다.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에 있습니다.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초대교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히브리파는 속되게 말하면 박힌 돌이고 헬라파는 굴러온 돌인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고 한다고 뭐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씀과 기도를 제쳐두고 봉사의 일에만 몰두했노라고 자책을 합니다. 그리고 헬라파 사람들을 리더로 세워서 교회의 리더십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베드로와 요한 같은 제자들이 말씀은 전하지 않고 주방에서 섬기다가 정신 차린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헬라파 리더들에게 교회 운영의 전권을 넘겨준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기득권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15장에서 헬라인들 가운데 성도들이 많이 생겨나자 유대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던 할례와 율법의 문제를 모두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려줍니다. 만약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어떻게 처리를 할까요. 교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교회 내에서의 이런 변화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디아스포라 성도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4장 후반부와 5장 전반부에서 바나바와 아나니아 부부의 모습이 대비가 되는 것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닙니다. 주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교를 위해서 준비해 두신 놀라운 자원들입니다.